"우리가 언제 우리 힘으로 우리 손으로 내가 살고 싶은 곳 만들 수 있겠어요. 오늘 이렇게 붓을 잡고 지역사회에서 만들어진 우리 보금자리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립시다."

2일 때늦은 봄비와 차가운 바람은 시청 앞 천막을 치고 모여있는 장애인들을 추위와 주변의 시선에 맞서게 만들었다.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애린 활동가는 얼어서 빨갛게 변한 손으로 마이크를 붙잡고 "우리가 살고 싶은 집 우리의 보금자리 만들자"를 외치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선포식의 의미를 몇 번이고 되새겼다.

이날 사회복지시설비리척결과 탈시설권리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은 2일 서울시청 광장 앞에서 '탈시설 마을 만들기' 선포식을 개최하고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을 촉구했다.

탈 시설 마을 만들기 선포식에 참석한 한 중증장애인은 탈시설 마을을 염원하며 어렵게 붓 끝을 옮겼다.

스티로폼으로 집 모양을 만들어, 선포식에 참석한 장애인들이 탈시설-자립생활권리를 요구하며 직접 붓으로 색을 칠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어째 우리가 집회만 하려고 하면 비가 오고, 바람이 이렇게 거센거야. 우리 중에 하늘에 잘 못한게 있는 사람이 있나. 아니면 하늘이 우리 답답한 심정 알아서 화가 나서 그런 거야"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장애인은 내리는 비를 원망하며 한숨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서울시청을 찾은 공투단 소속 회원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시가 관리 감독해야 할 사회복지법인 성람재단과 석암재단의 비리사태가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서울시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수 차례 서울시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된 탈시설 마을 만들기 선포식.

이들은 지난 3월 25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사회복지시설 비리척결을 촉구하며 무기한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대형사회복지법인의 사회복지시설 생활인의 인권침해와 국고보조금 횡령 등의 비리 혐의가 속속 사실로 들어 나고 있지만 제도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정부와 서울시로부터 1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받는 국내 최대 복지법인인 성람재단은 지난 2006년 1개시설에서만 27억원의 횡령혐의가 밝혀져 2006년 이사장을 비롯한 관계자 3명이 구속됐다.

하지만 성람재단은 3년째 후속 처리 과정을 놓고 장애인단체와 서울시, 법인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것.

성람재단은 철원지역의 장애인시설 3곳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한다고 밝혔지만 부동산 소유권 이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시설장을 포함한 전 직원 고용승계와 직원들의 체불 임금 10억여원을 지불하는 새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서울시는 결국 재단을 상대로 등기이전 소송을 시작했다.

최근 시설비리재단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석암재단은 이부일 이사장과 그 가족, 측근들이 시설을 운영하면서 장애수당을 갈취해 시설의 물품을 구입하고 열악한 식사와 폭행, 인권침해, 국고지원을 받는 무료시설 직원을 법인이 운용하는 유로시설에 근무케 하는 등 전형적인 시설비리의 다양함을 보여줬다.

그 결과 이부일 전 이사장은 지난 3월 6일 구속기소되고 현 이사장인 제복만(이부일씨 사위, 시설장인 홍정환(이부일씨 처남), 전 시설장인 김성숙은 불구속 기소된 상황이다.

성람공투단 소속 회원들은 "석암재단의 주요이사진과 법인산하 운영진이 현재 검찰에 종사자 인건비 횡령 등 기소되어 있는 상황과 성람재단의 경우 횡령에 이어 기부채납이행을 의도적으로 지연하고 있다"며 "서울시가 성람재단을 상대로 등기이전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법인취소를 강력히 촉구했다.

현재 사회복지사업법 제26조 3호에 따르면 '이 법인의 목적달성이 불가능하게 된 때' 혹은 '기타 이 법 또는 이 법에 의한 명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때'에 해당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관할 관청에서 설립허가를 취소 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이에 성람공투단 김정하 활동가는 "지난 수십 년 간 수많은 사회복지시설의 비리와 인권유린 사건들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일어나 사회적 물의를 빚어왔다"며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법인 및 시설운영자들이 깨끗이 물러나지 않고 실질적으로는 법인 및 시설운영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법인들을 더 이상 사회복지사업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석암재단이 운용하는 베데스다요양원 생활인 한규선씨는 "저는 시설에서 20여 년을 살아왔습니다. 시설에서 삶. 그것은 재단 설립자의 상품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재단 설립자는 친인척들로 재단을 족벌운영하며 각종 불법과 편법으로 우리 생활인들 앞으로 나오는 지원금을 빼돌려 부를 축척하고 우리는 못 먹고 못 입는데 설립자는 그 돈으로 외국에서 초호화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건 사회사업이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은 좋은일 한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모두 상품입니다. 우리는 수십년 동안 사육되어 온 것입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동물을 키우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꿈도 앞날의 희망도 없는 삶! 우리에게는 나의 삶을 선택 할 권리조차 허용되지 않는, 이것이 바로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현실입니다. 장애인도 자신의 삶을 택할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십시오"라며 글을 통해 안타까운 시설생활자의 현실을 호소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한 씨와 같은 시설 인권 유린을 막기 위해 △비리 사회복지법인 석암, 성람재단의 법인설립허가 취소 △성람재단 철원지역시설 즉각 시립화 △서울시 자립홈 도입해 시설생활인의 주거권 보장 △서울시 시설생활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초기 정착금 제공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생활시간 보장 △서울시 활동보조 자부담과 대상제한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 사회복지인권단체와 장애인단체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성람공투단 김정하 활동가는 "두 재단의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일선에서는 비리재단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서울시장의 무능력을 비판하고 있다"며 "서울시장은 정치인들을 만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거나 오락프로그램에 출현해 자기 이미지를 알리는데 정성을 쏟으면서 정착 서울시장의 직무였던 사회복지시설의 관리감독은 이행하지 않고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고 맹 비난했다.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박인용 사무국장은 "빨, 주, 초... 무지개 빛으로 색칠하는 모습을 보니 진짜로 만들어진 집은 아닌데 마음이 뿌듯하다"며 "차별과 고립에서 벗어나 우리가 그리는 마을을 만들 수 있도록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선미 기자 websun@bokjinews.com

진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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