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당의 금융소외자 총선정책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

이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720만명의 금융소외자들에게 ‘대사면을 통해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인수위는 1조원의 공적자금을 따로 조성해 금융채무불이행자를 포함한 금융소외자의 빚을 일부 탕감하거나, 금리를 낮춰주고, 연체 기록을 삭제하는 등의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금융기관과 보수언론이 반격에 부딪치자, 느닷없이 금융채무불이행자가 이미 적립한 국민연금을 담보로 적립금의 50%를 빌려 금융기관의 채무를 먼저 갚고, 이 후 저리로 국민연금 대부금을 상환하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 방안 또한 급여를 받을 권리를 담보로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한 국민연금법에 배치되고, 금융채무불이행자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연금의 사각지대를 심화시키는 정책 일뿐만 아니라 지원책이 아니라 결국 금융소외자 자신의 노후자금으로 현재의 빚을 갚는 방안일 뿐이라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금융소외자대책은 720만명의 금융소외자들과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복지인들에게도 투표에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사료되어, 3월31일에 개최된 한국빈곤문제연구소의 65차정기토론회에서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및 진보신당이 발표한 금융소의자대책의 총선공약에 대해서 논평하면 다음과 같다.

불과 총선을 열흘 앞둔 시점이었으나 국민연금을 담보로 한 대책에 대한 한나라당의 발표자는 아직 당론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부결될 가능성이 있는 실무평가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기금운용위에 안건으로 상정시킴으로써 이 방안을 강력하게 밀어 붙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당론으로 확정된 것 같다. 이에 대하여 통합민주당과 진보신당은 반대 입장이었다.

1000만원 미만의 돈만 있으면 사채를 갚고 자활의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소액채무자가 사금융 이용자의 85%에 달한다. 소액채무자에 대한 부채⦁원금 탕감대책을 인수위에서 발표했을 때 도덕적 해이를 주장하는 반론이 제기되자, 인수위 관계자는 "기업에 대해선 예전(박정희대통령시절) 8.3조치 같은 부채탕감이 있었고, 농어촌에 대해서도 부채 탕감과 경감이 있었으며, 은행 등 금융기관에도 IMF 이후 168조원의 공적자금을 들여서 구제한 바 있다"고 탕감정책을 추진할 의사를 보였었다.

그러나 소액금융채무불이행자들의 꿈이었던 이자나 원금의 탕감이나 연체기록 삭제 정책은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진보신당, 그 어느 당의 공약에도 없었다. 오히려 3월29일 서울중앙지법은 빚을 조금씩 지속적으로 같아야 하는 개인회생 심사기준을 완화하는 대신 빚을 갚지 않고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인파산 심사기준은 더 엄격히 적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은 대선 때 이명박대통령에게 속은 것이다.

통합신당과 한나라당은 신용회복프로그램에 따라 2년간 꾸준히 빚을 갚으면 ‘신용회복중’이라는 조회기록을 삭제해 줄 계획이라고 했는데, 이는 이미 시행 중인 것으로서 공약의 가치가 없다. 신용회복기금 설치를 통한 지원은 3당 모두 다 같이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휴면예금ㆍ보험금을 이용해 금융소외자들에게 마이크로 크레딧(소액신용대출), 마이크로 인슈어런스(소액보험) 등 사업을 지원할 소액서민금융재단이 출범했으므로 이는 뒷북공약에 불과하다. 단지 진보신당은 10조원 규모의 서민복지기금을 설치하여 금융소외자뿐만 아니라 복지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 지원에 쓰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는데, 현행 기초생활보장 예산의 두 배에 가까운 큰 규모의 기금이 운용된다면 복지수준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한나라당은 가혹한 빚 독촉을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채권추심법’을 18대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는 2006년 법무부의 서민법제 개선 방안에 포함돼 이미 시행 중인 법과 별 차이가 없다. 단지 진보신당은 최고이자율 25%로 인하, 면책자에 대한 차별폐지, 법위반 약탈적 대출행위자에 대한 징역형과 벌금형 병과조치, 불법사금융행위 신고포상제 운영, 연대보증제폐지, 면책자에 대한 불이익 폐지 등을 공약하였는데 이 공약들은 금융소외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무부서를 채권기관에서 월급을 받는 금감원,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중립적인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위원회로 옮기는 방안과 법무사나 변호사와 같은 법률서비스 시장의 장사들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고 사전에 채무조정을 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를 육성하여 채무조정을 맡기는 미국식 시스템의 구축에 대해서는 3당 모두 언급이 없었다.

이 방안들은 중요하지만 별로 예산이 들지 않고, ‘도덕적 해이’ 논란도 야기시키지 않으면서도 당사자들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당 모두 이 대책들에 대하여 언급이 없는 것은 당 관계자들이 금융소외자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으로 사료된다.

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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