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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낙태죄 폐지, 청와대는 남의 일 얘기하나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조시훈 기자 | 승인 2017.12.01 11:34

지난 11월 26일, 조국 민정수석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유도약 도입을 요구하는 시민 23만여 명의 청원에 대해 청와대의 ‘친절한’ 답변을 발표했다. 답변을 통해 1953년 형법상 낙태죄 제정 이후 오직 여성만을처벌하며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전혀 묻지 않았다는 점,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편협한 구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인정한 것은 일견 ‘전향적’이라 할 만하다.

국가 차원의 이러한 입장 변화가 있기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서 비롯한 고통으로 낙태죄의 부조리를 증명하고, 몸에 덧씌워진 낙인을 씻어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훌륭하신 나랏님이어느 날 짠하고 나타나 여성들을 어여삐 여기사 내리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십 년간 낙태죄 폐지를 위해 싸워 온 여성들과 시민의 힘으로 이끌어낸 눈물겨운 성취이자 작은 승리다.

그러나 여전히 청와대는 남일 이야기하듯 국회와 헌재의 역할만 강조할 뿐, 정작 정부의 계획과 대책에 대해선 소극적이다. 실태조사와 전문상담을 시행한다는데, 임신중절이 불법이며 처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온 청와대발 입장으로는 참 한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건강상의 위험, 고립과 두려움, 주변의 위협과 협박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나, 정부는 현재의 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당사자가 동의한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한 의사의 징계를 폐지하거나 경감할 수 있다. 하여 의료인이 처벌의 위험에 덜 위축되고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둘, 효과적이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자연유산유도약 미프진(미페프리스톤)은 WHO 필수의약품 목록에 오른 지 10년이 넘었지만 국내엔 수입조차 안 돼 있다. 정부는 식약처를 통해 제약사들이 미프진을 수입하도록 홍보와 장려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이는 현재 모자보건법상 허용사유 내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임신중지를 보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할 것이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현존하는 낙태죄 하에서 음성적으로 행해질 수밖에 없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해서도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다. 자연유산유도약 도입과 합법적 사용은 임신중지의 법적 지위와 관계없이 여성의 건강권과 안전할 권리를 위해 정부가 마땅히 시행해야 할 정책이다.

셋, 정부는 각 부처와 논의하여 정부입법계획을 수립하고 특별법을 도입할 수 있다.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의회의 입법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정책안과 입법안 로드맵을 제시할 수있다.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의회의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낼 것이다.

넷, 낙태죄 위헌소송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법무부를 통해 헌재에 위헌의견서를 제출 할 수 있다. 비슷한 사례는 민법상 호주제 위헌소송 시에도 찾아볼 수 있으며, 당시 법무부는 민법개정안을 헌법재판소에 직접제출했다. 헌법재판소는 5차에 걸친 공개변론 끝에 헌법불합치를 결정하였고 민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호주제가 폐지된 것이다.

(이외에도 정부가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상세한 정책은, 청와대보다 더 ‘친절한’ <성과재생산포럼>의 논평을 참고하라. <성과재생산포럼>은 여성의 건강과 성, 재생산권 등과 관련해 오랜 연구와 깊은 논의를바탕으로 중요한 정책을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

청와대의 답변은 무엇보다 국가의 책임을 수십 년 간 방기한 것에 대한 사과로부터 시작했어야 한다. 조국 수석을 포함한 청와대 인사들은 더 이상 재야 지식인도 진보 정치인도 아니다. 본인들이 바로 국가의 이름으로 개인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제한하고, 적극적으로 강제 단종을 지시하고, 경제 개발에 도움되지 않는 인구를 선별해온 국가의 자리에 서있으며, 이러한 국가 폭력을 방임해온 역사를 청산하고 국가 주도의인구 정책을 전환해야 할 주체다. 청와대는 자신들이 공히 갖고 있는 권한과 위치에 적합한 책임감을 명확히 인식하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수많은 정책들을시행하라.

녹색당

조시훈 기자  bokji@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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