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평가 태스크포스(TF)'는 지난해 공정위가 심의절차종료로 의결한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실체적·절차적 측면에서 일부 잘못이 있었다고 밝혔다.

TF팀장을 맡은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날 서울 공정거래조정원에서 진행한 브리핑을 통해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론/메틸이소티아졸론) 함유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인체위해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공정위가 인체위해성이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것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표시·광고법)을 입법취지와 표시·광고의 사회적 기능에 비춰 너무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공정위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심의절차 종료로 의결한 것은 유감"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추가적인 조사와 심의를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8월19일 소회의를 열어 CMIT/MIT를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애경과 이마트, 이 제품을 제조한 SK케미칼에 대한 표시·광고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위법성을 판단하지 않은 채 심의절차종료를 의결했다. 인체 위해 가능성 여부가 불명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TF는 사건의 실체적 측면에서 공정위 의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인체 위해 가능성에 대해 해당 사업자가 사전에 알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미국 환경청이 이 사건 제품 주성분인 CMIT/MTI에 대해 독성을 인정하고 있고 제조사인 SK케미칼이 작성한 물질안전보건자료에도 '흡입·섭취시 피부점막 및 체세포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 근거다.

또 사업자들이 별도 실험 등을 통해 제품의 안전성여부를 면밀하게 검증했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소비자 중 폐손상으로 사망에 이르는 등의 피해가 발생한 만큼 이러한 인체 위해 가능성에 관한 정보는 소비자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TF의 판단이다. 따라서 해당 사업자들이 인체위해 가능성 정보를 적극적으로 표시광고하지 않은 것은 표시광고법상 부당한 기만적 표시광고에 해당한다고 봤다.

절차적 하자도 발견됐다.

사회적 파장 등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전원회의에서 논의했어야 했지만 상임위원1명과 비상임위원 2명만이 참여한 소회의에서 결론을 내리면서 불필요한 의혹을 낳았다는 게 TF의 판단이다. 

당시 공정위는 사건 관련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던 상황에서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소회의 의결을 밀어붙인 것으로 확인됐다.

권 교수는 "전원회의에서 사건을 처리했다면 결과에 관계없이 의결의 신뢰성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소회의 합의가 위원들간 대면회의가 아닌 순차적 유선통화로 진행되면서 반드시 고려했어야 할 중요한 사실도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TF에 따르면 공정위 의결 전날인 지난해 8월18일 환경부가 CMIT/MIT를 원료로 사용한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를 단독으로 사용한 2명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추가 인정했지만 위원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진행하지 않았다. 

특히 위원들은 심의절차 종료 결정의 근거였던 환경부 연구의 내용과 의미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환경부 연구는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을 전제로 진행됐지만 공정위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손상 사이의 불분명한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TF는 일부 언론이 제기한 '윗선 외압에 따라 소회의가 심의절차 종료를 의결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TF는 2012년 공정위가 심의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 CMIT/MIT 함유 제품의 라벨 표시 외에 기사성 신문광고 등 다른 표시광고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해당 기사성 신문광고의 처분시효과 지났던 만큼 잘못된 판단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당시 사건의 위법성 판단은 공신력 있는 외부 전문기관(질병관리본부)의 동물실험결과에 사실상 의존할 수밖에 없어 공정위가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지난 9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재조사에 착수했고 지난 주 애경산업, 이마트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사업자에게 검찰고발 및 수백억원대 과징금 부과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 여부를 결정할 공정위 전원회의는 내년 초 중 진행될 예정이다.

남정규 기자  bjin8@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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