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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수 아이유가 숨고르며 전한 ‘말’…이것이 2018년에 묵직한 '팩트'다2018 정·재계 신년사 키워드 ‘변해야 산다’…“과연 가능할까?”
김명화 기자 | 승인 2018.01.11 15:54
화면 캡처

어제(10일) 가수 아이유는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묵직한 수상소감을 던졌다.

“사실 아직, 아직 좀 많이 슬픕니다. 사람으로서도 친구로서도 뮤지션으로서도 소중했던 한 분을 먼저 미리 먼 곳에 보내드리고 그분이 그렇게 간 이유를 아주 모를 것 같지 않아서 아직 많이 슬프고 미안합니다.”

이날 아이유는 골든디스크 음원 부문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동료 가수들의 축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그녀는 숨을 고르며 얼마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샤이니 종현에 대해 추모했다.

그리곤 이것으로 끝을 맺지 않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저뿐 아니라 다들 슬프실 것 같은데 다들 일상이 너무 바쁘고, 한 달 후, 1년 후를 고민하고 계획하느라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보내줄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쁘면 기쁘고 슬플 때 슬프고 배고프면 기운 없고,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당연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티스트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인 만큼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프로의식도 좋지만 사람으로서 자신을 돌보고 아꼈으면 좋겠습니다. 내색하지 않다가 병드는 일이 진심으로 진심으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상하신 분들 오늘 하루 동안은 마음껏 즐겁게 보내고 축하하다가 모두 잘 잤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아티스트뿐이랴.

아이유의 바람은 가수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소속사로도 향하고 있다. 그들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건강을 경시하지 않으며, 한층 발전된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

정‧재계의 총수들은 신년사에서 하나같이 '변화'를 강조했다. 그들이 신년 인사회에서 밝힌 ‘초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저성장 시대 ‘미래 먹거리’와 ‘혁신’ 등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와 아울러 '직원 복지와 업무 효율 향상'도 약속하고 있다. 

정부는 2018년을 그 어느 해보다 복지예산을 확대하였고 이로써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와 맞물려 시간당 7530원으로 오른 최저임금에 대한 회의론이 연일 사회면 이슈를 장식하고 있는 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의식해 신년사의 초반 상당량을 할애하면서 적극적인 소신을 피력했다. 대통령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후폭풍에 대한 우려는 일부 한계기업들에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착이 되면 오히려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당장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청와대가 나서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7월부터 정부는 영세 상공인들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도 낮추고, 상가 임대료 인상 상한률을 내리는 등 보완책 마련에 들어간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사회적인 합의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언제부턴가 고착화한 공동체의식의 부재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적으로 시스템을 변화시켰다. 갈수록 ‘함께 가기 힘든 사회’. 꼭 어울리는 인용은 아니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참으로 우리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남이 잘 되는 꼴을 보기 싫어하고 남을 딛고서라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 의식이 팽배하다.

냉혹한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들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부작용이란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자체가 갖는 모순이라서 세계사 흐름에 견주는 이도 있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수정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 나갈 것이란 시각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성장 잠재력 약화, 지역별‧계층별 양극화, 비정규직 증가 등의 고용악화, 급속한 고령화 문제 등의 이면에 도사리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빈부격차’다.

자본주의 자체가 문자 그대로, ‘자본으로 모든 게 가능한 시스템’이다. 돈 많은 사람이 더 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예를 들어, 100만원으로 150만원은 만드는 건 쉽다. 그러나 1억을 만드는 건 어렵다. 만약 5000만원이라면 1억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또 더 큰 돈일수록 더 큰 돈이 되고 시간이 짧아지게 된다. 그래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돈을 최고로 생각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멈추기란 불가능하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은 좋은 일례가 될 수 있겠다. 한국롯데 신동빈 회장은 일본롯데 지배까지 공고히 했다. 일본롯데는 한국롯데 규모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일본롯데까지 지배하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이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제도적으로 소득 하위 기준을 정해 생계비 지원과 세금 면제 혜택을 강구하고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빈부격차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이 유전무죄니 무전유죄니 하는 등의 말로 정의 되듯, 모든 것이 돈으로 작동되다 보니 법조차도 비싼 변호사가 승리하는 등 불합리한 일들은 셀 수 없이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생계비, 양육비, 학비 등을 지원해주면서 최소한의 환경을조성해 나가고 근로자와 사용자 간 ‘갑’과 ‘을’의 간극을 점차 좁히면서 사회적인 공감대는 제고의 여지를 둘 수가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히 간과될 수 있는 것이 '의식의 변화'이다. 복지혜택이 늘어 생활이 조금 나아졌다고 의식 수준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시대’지만 행복지수는 오히려 반비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삶의 질이 달라지려면, 무엇보다 의식의 수준이 함께 고양되어야 한다. 국민의 의식수준에 따라 대부분의 사회적 시스템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연동되는 시스템에서 빚어지는 부조리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 지금까지 누구 하나 대대적으로 손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야 적극적으로 손을 보겠다고 나섰다는 점을 우리는 환기시켜야만 한다. 

지속적으로, 소위 실패한 정책들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건 보수 정권이었고 보수언론이었다. 지금도 보수 성향의 각계각층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대부분 오늘도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급속한 임금인상에 따른 노동 공급 불균형으로 수요가 줄면서 실업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화원이나 경비원 등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해고 사례를 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가장 큰 맥락은 이것이다. 형편이 좋은 대기업의 고용주인 경우라면 최저임금 고용자가 적기도 할 뿐더러 올려줘도 경영에 문제되지 않지만, 고용인보다 사정이 썩 좋지도 않은 영세사업자, 자영업자라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문제 제기를 한다.

또 최저임금 사업장이 주로 자영업 종사자들과 영세기업 노동자임을 근거로 최저임금이 ‘을’끼리의 분배 다툼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성장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1960~1980년대 수출 전략은 내수 희생을 통해 수출 대기업이 비용 경쟁력을 높였다. 그 덕분에 수출 대기업들은 많은 기업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임금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며 얻은 기업이윤이 자연스럽게 내수로 흐르지 못하면서 수출 대기업들의 성장 이후에도 내수 서비스부문은 저임금 상태를 개선하지 못했다. 이러한 후폭풍으로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해고자들이 영세 자영업자가 되면서 서비스산업에 공급과잉이 발생했고, 낮은 조직률로 인해 노동조합이 임금 기준을 높이지도 못했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은 이러한 수출 대기업의 이윤이 내수로 흐르지 못하고 소멸한 것을 소득분배를 통해 재조정하겠다는 정책이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고 균등분배를 실현할 뿐 아니라 국가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최저임금은 곧 갑질 문화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최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침해와 열악한 근무여건이 드러나면서 사회적인 공분을 사고 있다.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들에 갑질한 사건이 그렇고, 한샘 성폭행 사건 등 모두가 ‘을’의 위치에서 문제 제기도 못하고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이제는 이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

복지는 곧 그 나라의 수준이고 그 기업의 수준이다.

목숨 걸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복지를 말하는 건 사치다. 왜 목숨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노력을 강요하는 건 착취다. '열심히'가 아니라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최소한의 인권도 복지도 보장 받을 수 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너와 나, 우리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렇게 바뀌지 않는 우리의 의식이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잡았다.

김명화 기자  mh6600@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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