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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투’…요동치는 '고양이 목에 방울...'그날 이후의 트라우마…'전쟁'과 맞먹는 '충격'
김명화 기자 | 승인 2018.02.06 16:27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무렵,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약간 경사진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반대편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런데 옆으로 비켜서려던 순간, 자전거에 탄 남자가 별안간 내 왼쪽 가슴을 주무르듯 콱 만지곤 도망가는 것이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겪은 충격으로 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망연자실했다. 별스럽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오래 전 기억임에도 그때의 황망한 수치심과 분노는 아직도 생생하게 소환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창원지검의 서지현 검사가 검찰 조직 내 성추행 피해를 폭로했다. 현직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과 결단은 이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그날 이후 생긴 트라우마. 

'미투 운동'은 바로 성추행 피해자들이 고백하고 있는 그날 이후 생긴 트라우마에 기인하고 있다. 자아를 비집고 들어온 상처는 평생을 따라붙어 자괴감, 우울 등 이름 모를 수치심으로 의식을 지배한다.

특히 성추행 또는 성폭력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는 다른 어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보다 충격이 크고 오래 간다고 보고돼 있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트라우마)‘를 분석한 국내외 논문자료에 따르면, 성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은 전쟁을 경험한 환자와 맞먹는 것으로, 다른 어떤 외상보다 크고 치료도 오래 걸린다.

임명호 단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충남해바라기센터 연구팀이 2015년 대한불안의학회지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들 가운데는 피해를 경험한 지 2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병원 치료를 받는 환자도 있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 40명과 일반인 83명의 정신과적 임상특성을 비교한 결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사에 참여한 성폭력 피해 유형은 강간 30명(75%), 강제추행 8명(20%), 성매매 2명(5%)이었다. 이들 중 31명(77.5%)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8명(20.2%)은 주요우울장애(우울증)로, 1명(2.5%)은 정상지능과 지적장애 사이에 놓인 ‘경계선지능’으로 각각 진단됐다. 

종합적인 연구결과를 통해 연구팀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점수가 60점 이상으로, 전쟁을 경험한 환자와 맞먹는다고 평가했다. 특히 교통사고를 비롯한 일반적인 외상 경험과 달리 불안을 다룰 수 있는 자아 방어 능력 전체를 교란할 만큼의 강력한 외상임을 시사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장기간에 걸쳐 더욱 악화하는 특징을 보였다. 21년 이상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불안에 대한 자가 방어 시스템이 실패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인지적 왜곡이나 내적 환상으로의 도피와 같은 정신병적 증상으로 이어졌다.

또 성폭력 경험이 거듭될수록 트라우마가 심해진다는 보고도 있다. 장형윤 아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과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가 지난해 대한의학회지(JKMS)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2014년 12월∼2015년 12월 사이 성폭력 피해로 치료받은 여성 105명 여성 9.5%(10명)가 1개월 후 조사에서 다시 이런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성폭력 재피해를 본 여성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증상이 피해를 한 번만 입은 여성들보다 더 심각했다.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정·재계를 비롯해 대학가와 문화계 등 사회 전반으로 '미투 운동'이 ​​번지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개설된 ‘미투’ 게시판에는 직장 내 성폭력 제보글이 넘쳐나고 있다. 젊은 여직원을 대상으로 한 노골적인 스킨십은 물론 폭로 후 ‘꽃뱀’으로 몰려 회사 생활이 어려워졌다는 사례가 수천 건에 달한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젠더 폭력 대책 태스크포스(TF)’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 단체 관계자들과 ‘미투 운동’ 관련 간담회를 오늘(6일) 열었다. 민주당 보좌진협의회도 전·현직 의원 보좌진을 상대로 피해 사례를 수집할 계획이다.

이처럼 여성 정치인과 언론인 등 과거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잇달아 고발하면서 논란은 점점 더 가열되는 양상이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단행동도 연일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서 검사 성추행 사건 가해자 및 관계자들을 처벌해달라는 청원글에 수만명이 지지를 보냈다. 

국내 '미투 운동'의 급격한 확산은 ‘더 이상 참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여성들의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과 미투 운동의 확산이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고 성폭력 인식 변화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모 일간지 보도를 인용하면, 최영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성폭력을 비롯한 부당한 현실을 이제는 참지 않겠다는 잠재된 인식의 분출이라고 봤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주변인에게서조차도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되어버리는 소위 ‘꽃뱀론’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사회 분위기를 기정사실로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이자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권인숙 법무부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어제(5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성폭력문제에 대해 올바른 인식과 사회적 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권 위원장은 어느 조직이나 어느 나라나 성폭력 사건이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일어나지만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리고 자유롭게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핵심을 짚었다. 즉,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대책기구 또는 대응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 대목이다.

특히 권 위원장이 한 말 중에서 '현재 여성 검사가 30%를 차지하고 있는 검찰 내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는 훨씬 이전에 더 많이 드러났어야 한다'고 꼬집었던 부분은 꽤 인상적이었다.

남성중심적인 한국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

권 위원장은 그동안 그렇지 못했던 요인으로 '남성중심적인 한국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를 꼽았다. 권 위원장의 바람대로라면 조직의 윗사람이 성추행한 사실을 드러내도 승진이나 조직원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흔히 사람들은 성희롱의 경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생활하는 게 다반사다. 따라서 의식의 부재, 교육의 부재, 잘못된 성문화에 대한 개선도 이번 기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보다 근본적인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갑질문화’도 바로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번 서 검사의 고발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성차별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폭로이며, 나아가 그로 인한 성폭력의 실상과 이를 대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이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으니 모두가 외쳐야 한다. 더 큰 소리로. 그리하여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상황은 바야흐로 수면 위로 드러난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김명화 기자  mh6600@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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