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존 (수원여자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 산성동복지회관 관장)

비싼 택시비를 써가며 굳이 시내 중심가로 김치찌개를 먹으러 간다. 차가 막히면 거의 두 시간 이상 걸림에도 먼 곳의 선지해장국집을 찾아간다. 또 주차하기 힘들어서 주변을 몇 바퀴 돌아야 함에도 꼭 찾아가는 냉면 집이 있다.

결코 비싼 가격의 세련된 집들이 아니다. 오히려 음식은 대체로 질박(質朴)하다. 또 항상 손님이 많아서인지 그다지 융숭하게 단골 대접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난 질박한 음식을 먹기 위해  다리품을 팔던지 또는 굳이 추가 비용을 들이면서도 나만의 단골집을 찾아간다.

그저 한 끼의 질박한 음식이련만 굳이 단골집을 찾는 내 속셈은 무엇일까. 질박한 음식의 이면에 담긴 결코 질박하지 않은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할머니 또는 엄마의 손맛에 이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손맛에 중독되어 반복적으로 찾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겨운 단골집에 와 있는 듯 입에는 침이 고이고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인다.

내가 선호하는 단골집은 대체로 국물의 매력에 의해 선호된 집들이다. 때론 얼큰하게, 때론 시원하게, 때론 담백하게 나를 음식 지락(至樂)에 빠지게 만들고, 이따금 인생관마저 바꿔주는 '참 음식'으로서 맛과 멋이 있는 집들이다. 이렇듯 육수로서 정평이 난 집들이다. 그런데 그 탁월한 육수가 앞으로 다소 불안하기도 하다. 육수의 주재료인 쇠고기 잡뼈를 미국산으로 쓸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산 쇠고기의 잡뼈 등은 대표적인 광우병 위험물질인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논란은 이제 내 단골집 순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관계 장관은 뼈를 우려먹는 우리의 식 습관을 하나의 문제로 언급하기도 했다.

또 한 전문가는 미국산 쇠고기로 인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된 행운아가 은행에서 상금을 찾아 나오다 갑작스레 벼락 맞는 정도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불행의 경우라고 했다. 또한 관계 장관은 향후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고깃국을 과천종합청사의 공무원들을 위한 식단으로 꾸준히 제공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거의 영에 가깝다는 확률 그리고 자신 있는 농정 책임자의 확신 등을 고려한다면 내 결정은 비교적 쉽다. 미국산 쇠고기 잡뼈로 국물을 우려낸다 해도 난 질박한 가격의 단골집을 여전히 찾아 갈 것이다. 한데 아무리 영에 가까운 확률이라도 내 가족 특히 아들놈에게는 지독한 불행의 가능성을 남겨주고 싶지 않다.

질박한 내 단골집들이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마음 또는 할머니의 마음에서 보다 안전한 국물을 만들고자 한우 등을 선택하고 불가피하게 질박했던 음식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하나의 선택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비록 안전에 일부 우려가 제기되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라 추정하여 미국산 쇠고기 및 잡뼈를 이용하여 육수를 만들고 여전히 질박한 가격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찾도록 하는 또 하나의 선택이 있을 것이다.

단골집의 선택에 따라 나 또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질박한 가격의 미국산 소뼈를 사용하는 나 홀로 단골집이 그 하나가 될 것이다. 또 모든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국산 한우만을 고집하여 가격을 인상한 집은 아들 등 가족과 함께 가는 또 다른 단골집이 될 것이다.

사실 어느 맥락에서 이러한 분화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수입육 식재료를 활용함으로써 저렴한 음식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도로변에 즐비한 고기집들, 반면 청정지역 한우 또는 마블링 등을 강조하며 주머니가 넉넉한 계층을 겨냥하는 교외의 가든들. 이미 분화는 시작되었으며, 이제는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을 뿐이다.

먹을 것은 우리 모두에게 같지 않다. 각자의 처지 또는 상황에 따라 갈라지고 분별된다. 밥의 분화를 모든 차별의 근원으로 이해하셨던 다석 유영모(柳永模)선생이라면 이 현실을 보고, 어찌 처방하였을까. 선생의 지고함이 더욱 그리워질 뿐이다. 모든 밥의 분화에 대처할 나의 지혜를 쉬 구할 길은 없다. 하지만 단 하나의 지혜만은 반드시 갈구할 것이다.

바로 단체급식과 관련한 나의 지혜이다. 도입이 임박함에 따라 우리의 단체급식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사용 여부 등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잘 알다시피 단체급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편리성과 각각의 경제성을 추구하여 반드시 어머니의 도시락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다. 맛과 정성 그리고 건강을 늘 고려하기보다는 이익에 보다 우선적 관심을 두는 대형 급식 업체들이 즐비한 현실이다. 그러기에 더욱 큰 우려를 갖는 것이다.

대표적인 단체급식은 학교나 군대이다. 하지만 학교나 군대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곳의 급식에 대해서는 우리 모든 어머니의 꾸준한 관심과 날카로운 감시가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논란 중에 한우만을 쓸 예정이며 부족한 단백질은 오리 등 가금류로 대체하겠다는 국방부의 서두른 발표도 군대에 자식을 보낸 많은 어머니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기민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학교 그리고 군대 등의 급식은 우리 모두가 직,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그 관심이 지대할 것이다. 그래서 분명 그 안전이 지켜질 것이다. 이들보다 미국산 쇠고기 등 불안한 식 재료에 의해 밥상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곳은 필경 이런 곳이 아닐까? 밥상의 주체임에도 그 선택의 방법이 없고 그저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곳, 우리의 관심이 소홀하며 그다지 큰 감시의 손길이 없는 곳,  때론 지금의 먹기에 급급하여 먼 장래의 안전은 그저 배부른 공허한 소리라 생각하는 곳 등등.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곳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공의 편협함으로 난 사회복지 생활시설의 급식 그리고 저소득계층 대상의 무료급식 및 푸드 뱅크 등이 우선 떠오른다. 물론 생활인 또는 사회복지 대상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동료 전문가들을 크게 신뢰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절감 등을 강조하는 또 다른 논리가 분명 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이곳 식탁의 안전이 저해될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이곳의 밥상을 우선적으로 지키자는 권유는 공허할 뿐이다. 단지 이곳의 밥상도 우리 모두의 자식을 위한 밥상임을 인식하고 부모의 마음으로서 늘 관심을 가지며, 그 안전을 지켜달라고 간청하고 싶다. 거의 가능성이 없다하지만 그 불안으로 인해 자식에게 먹이지 않으려는 내 욕심은 더 커져야 한다. 그래서 보다 많은 나의 자식들을 구해야 한다. 난 부모의 심정으로 이곳의 음식을 반드시 지켜내고 싶다.

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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