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여자대학 사회복지학과 이계존 교수

 마당, 늘 집 근처에 마당이 있다. 언제고 그 마당에 나가면 친구들이 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숨바꼭질 등 다양한 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어울린다.
이따금 싸움이 벌어진다. '너 금 밟았어', '내가 언제 금 밟았어' 등등. 둘 사이의 다툼이 시작된다. 말싸움이 계속되더니 몸싸움이 된다. '이 놈이' 등등. 우연히 지나가던 한 친구의 엄마, '야! 우리 애한테 왜 그래, 너 혼난다'라며 고함을 지른다. 아줌마의 등장으로 상대 친구는 궁지에 몰린다. 그 친구를 염려하여 또 다른 한 친구는 쪼르르 달려가 상대 친구의 엄마에게 고자질한다. 마침내 상대 친구의 엄마도 싸움판에 달려온다. 이제 두 아줌마의 싸움이 된다. '이 여편네가 우리 애한테'.

싸움은 해질 녘까지 계속된다. 그리하여 퇴근길 아저씨들의 싸움으로 번진다. '某氏! 당신 그럴 거야', 험악한 분위기로 큰 싸움이 예상된다. 찰나 한 아저씨가 '잠깐 보자며' 다른 쪽으로 유인한다. 두 아저씨는 마당에서 벗어난다. 모두는 두 아저씨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불안해한다. 혹 큰 주먹다짐이 벌어질까 염려한다.

동네 어귀의 구멍가게, 두 아저씨는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김치 한 쪼가리 앞에 앉아있다. 싸움은 뒷전이고 그저 술을 들이키기에 바쁘다. 이후 불콰한 두 아저씨는 다시 마당으로 돌아온다. 그리곤 불안해하던 모두에게 선언한다. '다툼은 없었던 것으로 한다. 친구끼리 싸움은 다반사다. 앞으로 종종 싸우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화해해라. 우리는 모두 이렇듯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결정 이후, 촛불문화제에서 비롯된 일련의 흐름에 주목한다. 촛불 문화제는 '엄마의 마음'으로 밥상을 만들고자 하는 여학생들의 순수 열정에서 시작하였다. 그 열정에 대해 상당한 국민적 지지가 이어졌고, 여학생 외에도 다수 국민이 참여하는 대동(大同)의 마당으로 확산되었다.

마당의 크기와 열기에 놀란 집권세력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새삼 놀라며, 최고 집권자가 두 차례 사과를 하기도 했다. 분명 촛불의 순수한 열정이 결실을 맺고, 그 바람대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감성적 사과로 무릎을 꿇었던 집권세력은 후속 행동은 유보하였고, 교묘한 지연으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일정 시점이 지나자 초기 자신들의 입장을 거의 변화 없이 관철하고야 말았다.

이 과정에서 집권세력의 유일한 전략은 이항대립(二項對立)에 근거하는 적대화 전략이었다. 촛불의 중심이던 여학생들을 '일부 특정세력에 의해 교사되었다'고 매도하였다. 연이어 반미(反美), 반정부 세력에 의한 '정치 협잡꾼' 또는 법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세력' 등으로 폄하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촛불의 도화선으로 지목되던 특정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서 그리고 촛불마당과 관련하여 진정한 논의를 추구하던 인터넷 공간에 대해서도 각각 사소한 오류만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마녀사냥으로 몰고 갔다.

촛불은 시청 앞 광장 그리고 인터넷 공간에서 한 결같이 진정한 교류를 통해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며 화해하는 하나 되는 마당을 기대하여 왔다. 이러한 여망(輿望)으로 주요 종교의 성직자들이 화해의 번제(燔祭)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컨테이너박스 또는 경찰차량 봉쇄 등으로 상징되듯 소통 불가만이 엄연한 장벽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기본적 소통마저도 불가한 상태이기에 모두 하나되는 대동은 허망하기만 한 한낱 미몽(迷夢)에 불과하였다.

지난 수십여일 가열 차게 타오르던 촛불이 이제 주춤해 지고 있다. 최근 광화문 등지에 모인 촛불의 열기가 예전만 못한 것이다. 바라던 성과를 얻음으로써 촛불의 열기가 수그러진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집권세력 등의 반대논리에 찬동(贊同)하여 촛불로부터의 이탈세력이 늘어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미래를 촛불만으로 밝히기에는 다소 역부족이기에 당분간 숨을 고르는 것은 아닐까? 바람보다 더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더 먼저 일어나는 진정한 지혜로 나아감은 아닐까?

촛불의 힘에 의해 집권세력은 절박한 궁지에 몰렸었다. 또 국민의 진정한 눈높이도 깨닫게 되었다. 한데 현실적으로 촛불에 의한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그렇지만 촛불이 얻은 것은 구체적이지 않을 뿐 지나치게 크다. 없는 듯하지만 없는 곳이 없다. 촛불로서 마당을 열고 크게 하나되는 대동 경험, 이는 우리 모두가 얻은 큰 자산인 것이다. 또 그 자산으로 우리의 지혜로움 그리고 집단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촛불은 새로운 전기를 맞아야 한다. '얻은 것이 없다'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혀서는 안될 것이다. '얻은 것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보다 큰 얻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집권세력을 더 궁지로 몬다고 당장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변화는 고사하고 파국이 염려될 지경이다. 그러기에 이제 촛불은 더 이상 집권세력을 궁지로 몰기보다는 솔선해서 더 큰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 집권세력의 오류를 촛불로 밝히며 깨달음을 주었듯이, 지금부터는 저들이 향후 나아갈 바를 우리의 생활에서 은근한 촛불로 밝혀줌으로써 그 나아갈 바를 제시해 줘야 할 것이다.

난 언제고 마당을 대망(待望)한다. 우리의 마당, 물론 예전과 다른 형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로 어울리고, 각자 드러나고, 이따금 갈등하지만 마침내 화해하며 하나되는 마당. 난 대동(大同)의 마당을 대망할 뿐이다.

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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