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

외환위기 때 강제로 퇴출된 전직 충청은행원들은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화이트칼라 중산층이었다. 본연구소는 ‘MBC스페셜팀’의 지원을 받아서 대전시민사회연구소와 공동으로 IMF 10년 후인 2007년 10월에 충청은행 퇴출자들의 생활실태를 분석하고, 특히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빈곤실태를 살펴봄으로써 IMF 이후 무너진 중산층의 10년 후의 노동시장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조사결과를 요약하고 정책대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8년 퇴출 당시에 충청은행 임직원은 총1천447명이었는데, 그 중 65.3%인 945명이 퇴출되었다. 연락이 가능한 퇴출행원 전원에게 설문지를 우송하여 신빙성 있는 응답을 얻은 465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1998년 퇴출 당시에는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50% 이하의 빈곤층은 단 한 사람도 없었으나, 10년 후인 2007년 10월에 소득이 도시근로자가구 평균 중위소득의 50%인 164만1천원 이하의 빈곤층은 235명으로서 전체 응답자의 50.6%로 조사되었다. 중산층 충청은행 퇴출자의 반 이상이 빈곤층으로 무너져 내려 신 빈곤층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빈곤층은 대부분 저학력자이지만, 전직 충청은행원 빈곤층의 80% 이상이 고졸학력자였다는데, 이 수치는 전체 고졸행원 208명의 61.0%인 127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빈곤층 중에 재직당시에 기사-경비 등으로 일했던 중졸이하 학력자의 월평균소득은 110만원인데 비하여, 고졸학력자의 월평균소득은 84만6천원으로서 중졸보다 25만4천원이나 더 적었다.

이러한 충격적인 결과는 화이트칼라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진입장벽이 블루칼라 노동시장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으로 인하여 한국의 화이트칼라 노동시장은 사용자에게는 해고가 자유로운 유연한 시장이지만 노동자에게는 한 번 돌아가면 다시 역박향 으로는 돌지 않는 톱니효과(Ratchet Effect)가 나타나는 경직된 시장인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실업률은 3%대 이지만 전체 빈곤퇴직행원 235명의 44.3%인 104명이 무직이었다. 충청은행퇴직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실업과 빈곤문제가 이토록 심각하다. 노동시장 재진입 기회의 박탈은 미래 생활만족에 대한 기대 상실로 이어져 48.1%인 113명이 미래 생활만족에 대해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반 정도가 ‘희망이 거세된 절망의 빈곤층’으로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퇴출자 중에 많은 사람들이 지난 10년간, 퇴출 -> 경제적 궁핍 -> 기족갈등 -> 가족해체 -> 자녀빈곤 -> 빈곤의 대물림의 수순을 겪었다. 빈곤층 중에서 5명이 자살 했으며, 부부갈등을 경험한 사람은 178명으로서 3/4이 넘었고, 별거경험자는 47명(26.9%), 이혼한 사람도 17명(9.6%)이었다. 특히 과중채무자들 중에서 가족해체에 이르는 극단적인 비극을 경험한 사람이 많았다. 

실업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IMF로부터 거액의 구조조정기금을 지원받았던 노동부는 이들과 같은 구조적 실업자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사전적 혹은 사후적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았다. 구조적 대량실업이 발생하면, 재난을 당했을 때 미리 대피시키는 것과 같이 사전 방책으로 대비시키고, 이미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는 적극적이고 맞춤적인 사후방책으로 노동시장 재진입 시키는 것이 노동부 본연의 의무이다. 그러나 정부의 재취업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단지 7명(1.5%)뿐이었다. 

빈곤층 퇴직행원의 24.3%가 채무불이행 경험자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고학력의 한창 일할 나이의 양질의 인재들인 은행원들의 일자리를 뺐었으나 재기의 기회를 노동시장에서 제공하지 못했다면 자영업 진출을 통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적절한 특별 경영지원을 해주었어야만했다. 그러나 정부는 업종별 적절한 자영업 규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도 않은 채 무분별하게 이들을 자영시장으로 유도하여 경기가 조금만 부진해도 한계선상의 자영업자들이 우루루 시장에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후 적절한 경영지원을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과잉신용제공’으로 폐업시기를 놓치도록 유도하여 ‘적게 말아먹을 것을 크게 말아먹는 신용대란사태’를 초래시켰고, 이러한 정부주도의 신용정책의 실패는 자영업으로 진출한 사람들을 무더기로 채무불이행의 늪으로 빠뜨렸다. 국가는 노동시장에서 강제로 퇴출시킬 때, 자영업으로 유도할 때, 그리고 과잉신용제공으로 도산시킬 때만 있었고, 그들에게 살 길을 열어줄 때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무더기로 신용불량자가 발생했고, 채무불이행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마저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서 57명(24.3%)이 아직도 빚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별한 정책적 배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실업빈곤층 104명인데, 이들의 대부분은 30~40대 고졸자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이들을 한사람 한 사람 개별적 심층면접을 한 후, 장기 교육훈련, 마이크로 크레딧 은행이나 사회적 기업 설립을 통한 일자리 지원, 창업지원, 자녀학비지원, 주거지원, 신용회복지원, 등의 특별지원 프로그램을 통하여 빈곤의 늪에서 건져 내어야 할 것이다. 

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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