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떠들썩한 교실에 고요함이 찾아온다. 나를 휘감고 있던 약간의 긴장감을 무장해제하고, 창밖의 햇살 가득한 교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뒤돌아보면 두 발 대신에 휠체어 두 바퀴에 의지해 온 지난날이 아득하기만 하다.

나는 1994년 5월에 군에서 진지공사 도중에 사고를 당했다. 그날도 하늘은 맑고 연두색 나뭇잎들이 눈부신 5월의 햇살에 반짝이며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힘든 진지공사였지만 자연이 주는 위로와 아름다움에 가슴 벅찬 하루를 시작했었다. 오전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 소대원들이 파던 작은 굴이 ‘쿵’하는 소리와 함께 흙덩이가 무너져 내렸다. 잠깐 정신을 잃으면서 ‘이렇게 죽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왜했는지 모른다. 예기치 못한 일이라 어떤 상황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주변의 아우성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어둡고 답답한 동굴이 무섭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웬일인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흙이 나를 짓누르고 있어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살려달라는 소리를 내지르려고 했지만 호흡하기도 힘들었다. 점점 의식이 또렷해지면서 끊어질 듯한 허리의 통증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동료들이 파묻혀 있던 나를 무 뽑듯이 빼내었지만 걸을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 자랑할 것이라고는 건강 밖에 없었던지라, 병원에 가서 며칠만 있으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며, 내가 믿는 하나님을 수도 없이 찾았다.

후송 헬기를 타고 통합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로 들어갈 때, 나를 측은하게 쳐다보던 주변 사람들의 낯선 눈빛이 아직도 내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하다. 병원에 가면 금세 치료 될 것이라는 스스로의 위안은 확신을 잃어가고 불안감이 밀려왔다. 몇 명의 군의관이 뭔가를 살펴보고 확인한 뒤에, 자기들끼리 알 수 없는 말로 주고받는데도 상태가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옆에 있던 간호장교에게 무심코 물었던 첫 마디가 “내가 앞으로 못 걷는 건가요?”였다. 간호장교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가엾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난 그 것이 내가 못 걷는다는 말로 들렸다.

잠시 후 군의관이 내게 주사바늘을 꽂고 코에 가는 관을 넣으려고 했지만 난 거부를 하였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 누나, 동생들, 조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들에게 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하고 슬픔과 고통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지만 눈물 한 방울이 나오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차라리 날 죽여주세요.”라고 힘없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병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한 참 모내기 준비로 바쁘던 시기에 부모님은 생계를 내려놓고 내 병 수발을 하셨다. 부모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드려야 할 때에 다시 아기처럼 모든 걸 맡겨야만 하다니...

건강하게 두 발로 걸어서 입대했었지만 집에 돌아올 때는 휠체어를 타고 왔다. 대부분의 시골집이 그렇듯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기에는 불편함이 많았다.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그저 집에 얌전히 있는 것이 우리 가족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밖을 나가고 싶은 마음도, 용기도 없었다.

별 특별한 일도, 생각도 없이 매일 매일 시간만 흘려보내던 어느 날, 병원에 치료를 받기 위해 갔다가, 나와 같이 휠체어를 타는 분들이 운전을 하는 것을 보고 도전을 받았다. 운전을 하면 뭔가 나에게 새로운 일이 있을 같은,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함이 들었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던 날 얼마나 뿌듯했는지... 하지만 막상 운전을 시작하고 나니 며칠이 안 되어 갈 곳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날개를 단 듯 자유로울 것 같았는데 마땅히 갈 곳도 없었고, 간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고 싶어 바닷가에는 갔지만 바다 가까이에 가지 못하고, 차 안에 앉아서 멀리 있는 바다를 바라만 보고 돌아오는 마음은 씁쓸하여 가지 않음만 못했다. 그러다 보니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걷지 못하는 것보다 나를 더 괴롭혔던 것은 현실 세계에 섞이지 못하고 멀리 동떨어져 바라만 본다는 것이었다. 세상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미래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하얗고 가느다란 한줄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으로 태어나 세월만 버리다 죽어야만 되는가 싶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는 것 같은 내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줄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그래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뭐라도 도전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본래 의지가 강하지도 못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다급했던지, 그 마음을 품고 얼마 안 되어, 수능 교재를 구입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할만한 체력도, 건강도 없는 상황 속에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갈등이 나를 흔들었지만, 단 하루라도 세상 속에서 몸부림 치고 싶었다.

엉덩이 피부가 약해서 조금만 더 무리해도 욕창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에 내가 앉아 있을 시간은 길면 10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잡은 책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먹고 자고 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빼고는 책을 붙잡고 있었다. 허리가 아프면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았다. 졸음이 오고 피곤했지만 나의 한계를 뛰어 넘고 싶었다. 나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싶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능 시험을 다 치루고 나오던 날, 나는 그 동안 참았던 모든 것을 토해내 듯 차안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노력했던 과정만으로도 나에게는 말로 표현 못할 성취감으로 충만했다. 두 다리를 다시 얻은 듯한 자신감마저 들었다.

수능 점수도 내가 목표로 했던 만큼 받았고, 우연히 알게 된 우석대학교 특수교육과에 기대감과 설렘으로 입학했지만 내가 넘어야 할 현실의 장벽은 높아만 보였다.

몸이 부서져라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었다. 강의를 받기 위해서 주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2층 계단을 들려올라 가는 기분은, 오랜 정박 끝에 어렵게 출항한 나를 움찔하게 했다.

중간고사를 보고 엉덩이가 좋지 않아 더 이상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1학년 1학기를 마쳤다. 2학년 1학기 때에는 3월부터 엉덩이가 좋지 않아 결국 휴학을 하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여기까지인가 보다’라는 서글픈 마음만 들었다. 세상으로 나와 2년이 못되어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서라도 졸업은 해보자는 마음으로 4년을 다녔다.

건강으로 인하여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없었지만, 임용이라도 한번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공부하기 위해서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쑤셔서 고통스러웠다.

하나님께 마지막까지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건강을 허락해 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수할 수 있는 체력도 없었으므로 처음 준비하는 임용시험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2005년 12월에 임용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차가운 눈이 솜털처럼 가볍고 포근하게 느껴졌었다. 광주에서 내가 사는 곳까지 1시간 30분이면 오는 길을 폭설로 인해 5시간 넘게 긴장감 속에서 달려왔는데도, 해방감으로 평안하고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시험 결과를 발표하던 날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합격에 대한 욕심 없이 준비한 임용시험이었지만 막상 시험을 보고 나니 은근히 기대를 하게 되었다.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 세 글자를 보는 순간, 너무도 기뻐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나 합격을 하고 나니 내가 학교 현장에서 과연 교사로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신변처리도 어려운 내가 어떻게 직장생활을 책임감 있게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아직 뚜렷한 대책도 없이 신규교사연수를 받고 특수학교에 발령을 받아 2006년 3월 2일부터 근무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직장생활. 나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 가운데 교직생활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신변처리로 부끄러운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과 부대끼며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여 집에 오면 온몸이 녹초가 되어 버렸다.

교직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던 어느 날, 급기야 신변처리 문제로 난처한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몰라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누군가에게 알려지는 것은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집에 가서 처리해야 되는데 교감 선생님에게 사실대로 말씀드릴 용기가 없어서,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약을 가지러 가야 되겠다고 둘러대고 황급히 집으로 갔었다.

특수학교에 근무하다보니 신체적으로 아이들을 지도해야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내가 직접 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통해서 지도해야만 할 때는 깊은 한숨이 나온다. 내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 씩 버거워지지만 나에게 “선생님”하고 달려와 안기는 우리 아이들을 볼 때면, 어느새 구겨져 있던 내 마음이 펴지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는다.

장애로 인하여 괴롭고 고통스러워 내 삶이 밑바닥까지 뒤흔들릴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같은 착각이 들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지만 오늘 여기에 이르기까지 쉽게 넘지 못할 크고 작은 일들이 내 어깨를 무겁게 눌렀었다. 그러나 힘겹지만 꿈을 향해 가는 하루는 사는 맛이 있고 내일에 대한 소망을 안겨주는 원동력이 된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1학기를 보냈다.

아직은 부족한 것도, 실수도 많은 초보교사이지만 나만의 색깔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아침을 열었다. 오늘 하루도 내가 만나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나로 인하여 더욱 풍요로워지고, 행복하게 마음껏 웃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꿈을 꾸지 못하고 꿈을 상실한 많은 우리 아이들에게 소중한 꿈을 그려주고 싶다.

장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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