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독립생활 비전21. 2003년 2월 중증장애인 6명이 모여 창립한 독립생활 비전21은 올해로 만 2년째 운영되고 있지만 정부 예산을 한푼 받지 못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4월12일, 독립생활 비전21 최광훈 회장은 출근과 동시에 하루 일정확인에서부터 각 단체들로부터 들어온 자료, 구청, 사회복지재단에 제출할 자료정리에 정신이 없다.

기존 단체들이 다양한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자 스스로의 권익을 찾고자 하는 장애인이 늘고 있다. <사진 최경훈 기자>

대개 일주일의 4～5일을 연대회의나 세미나 참석 등으로 외부에서 보내지만 오늘은 사무실에 산적해 있는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사무실로 직행했던 것.

근육병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그는 활동보조도우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최 회장은 “복지관 등에서의 목욕서비스와 이발서비스 등은 재가장애인의 자립생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많은 장애인들이 집에만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자립생활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보다 많은 재가장애인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 비전 21을 창립하게 됐다”고 밝혔다.

1982년 건설교통부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던 당시 디스크인줄로만 알고 병원을 찾았던 그는 ‘근육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20년을 사회와 벽을 쌓아오던 중, 한 활동보조도우미를 통해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고 이현준 간사를 알게됐고, 자신보다 중증인 이 간사의 사회활동을 보고 자극을 받아 단체설립에까지 이르게 됐다.

2003년 설립당시 수많은 임의단체 중 하나이다 보니 사무실도 없고, 직원도 없이 혼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약 2년 사이 지금은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60만원의 어엿한 사무실도 장만하고 자립생활에 대한 재가장애인들의 관심으로 회원도 160여명 확보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새 사무실 식구도 4명이나 늘어 단체다운 면모를 갖춰 재가장애인들의 사회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단체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경제적인 것 아니겠냐”고 운을 뗀 최 회장은 “작년에는 지자체에서 올해부터 지원을 해주겠다고 구두 약속했었는데, 올해 지방이양으로 지역협의체가 거의 관할하다보니 임의단체를 지원해 줄만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전혀 예산을 지원 받지 못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현재 독립생활 비전21은 오로지 매달 회원들이 내는 5천원의 회비, 지역사회와 교회 후원금 등으로 충당되고 있지만, 이들이 사업을 원활히 진행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장애인의 날 행사 일환으로 열린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거리 행진에 참석한 최광훈 회장은 동료상담을 통한 재가중증장애인들의 사회참여를 유도하고 있다.<사진 최경훈 기자>

 그가 말하는 임의단체의 어려움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임의단체이다보니 지역구나 다른 기관에 프로포절을 내도 자격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특별한 활동사항이 없다고 무시당하는게 다반사”라는 그는 “단체를 각인시킬 수 있는 특별한 활동사항을 만들고 싶어도 자격을 내세워 거절하는 웃지못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비록 비영리 임의단체로 운영되고 있지만 비전21의 성과만은 메이저급 장애단체가 부럽지 않다.

“우리 단체가 제일 처음 해낸 일이 공익요원의 사회복지단체 파견”이라고 자랑하는 최 회장은 “무엇보다 전동휠체어의 건보적용 방침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올해 4월부터 적용 예정이었으나 다소 지연되고 있는 상태지만, 전동휠체어 가격이 만만치 않아 구입하지 못했던 재가장애인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던 것.

재가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단체를 설립한 최 회장은 중증장애인들의 모습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항상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단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다보면 주위에서 도와주려고 하지만 도와주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이는 사회와 벽을 쌓고 집에서만 지내온 장애인들의 책임도 크다”며 ‘장애인들의 사회참여’를 주장했다.

‘일주일에 꼭 1～2명씩은 동료상담을 한다’는 그는 예전보다 많은 재가장애인들이 찾아와 상담을 하는 등 장애인들의 사회참여 욕구도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상담은 주로 그동안 집에서 차별받고 억압받아 왔던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 조언까지 놓치지 않고 덧붙인다.

오후 1시가 돼서야 점심을 먹는 최 회장은 운영비 절감차원에서 사무실에 취사도구를 구비, 밑반찬 몇 개놓고 직접 해먹기 일쑤지만 “오늘은 특별히 외식을 선택했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2시가 넘어서야 끝난 점심식사 후 420 장애인의 날 행사 참여 일정 및 내부 미결제 사안에 대해 간단한 정보교류와 회의를 갖고 또다시 국회의원과 사회복지단체에 제출할 ‘재가중증장애인 제원제도 구축 방안’ 작성에 들어갔다.

아주 중요하거나 비공개 문서의 경우에는 자신이 입에 스틱을 물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지만, 대부분의 모든 작업들에 대해서는 최 회장이 불러주고 활동보조도우미가 받아 적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제는 활동보조도우미와 같이 지낸 시간이 꽤 길어지다 보니 손발이 척척 맞는다.

한국근육장애인협회 회장직도 겸직하고 있는 그는 최근 한국뇌성마비연합회를 중심으로 척수장애인협회, 근육장애인협회가 공동으로 중증장애인단체연대회의를 구성 중에 있어, 다른 때보다 외근이 잦다.

“장애인단체연대회의는 장애인연금법 등을 핵심사항으로 두고 곧  출범하게 될 것”이라며 “수급자일 수밖에 없는 중증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20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을 때의 가족간 갈등이 사회생활을 함으로써 말끔히 해소됐다”며 “우리들의 활동을 통해 지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집에서 가족간의 갈등과 차별을 받고 있는 장애인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미약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하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