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존(수원여자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위스타트(we start)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위(we)스타트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복지(welfare)와 교육(education) 서비스를 제공하여 가난함에도 다른 아이들과 동일한 출발선을 보장하려는 프로그램이다. 맞벌이 가정 등의 아이들을 방과 후 보살피며, 간식 또는 저녁밥을 먹이고, 또 여러 가지 공부도 가르친다.

하지만 가정에서처럼 개별적 관심으로 보살피기보다는 많은 아이를 한데 모아 자칫 통제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또 고른 영양을 갖춘 식단을 마련해 주고 싶지만 빈한한 예산으로 다소 한계가 있다. 특히 각자의 학력수준에 적합한 맞춤교육을 제공하고 싶으나 인력 및 예산의 부족으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러기에 동일한 출발선을 보장한다는 위스타트의 캐치프레이즈는 가난하기에 결코 동일할 수 없음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제중의 설립, 인가와 관련한 논란이 뜨겁다. 일부 상류층의 귀족교육은 늘 존재하여 왔기에 쉬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어 등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기에 상당한 불만이 있다. 국제중에서 모국어의 깊은 이해와 활용은 철저히 무시될 것이다. 단지 입시를 위해 영어만이 전략적으로 강조될 뿐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더욱 분개하는 것은 국제중의 전형방식이다. 계획에 의하면 생활기록부 그리고 자기소개서 등이 우선되는 선발 근거라 한다. 하지만 현행 생활기록부의 변별력이 거의 없기에 자기소개서가 입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보다 중시될 것이다. 한데 자기소개서에는 입학 후 수학능력을 주로 언급할 것이고, 이는 대부분 영어와 관련될 것이다. 그러기에 국제중 입학을 희망하는 다수 초등학생들이 매우 어린 나이부터 영어 사교육의 광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후 전형방식은 더 놀랍다. 삼배수로 압축된 지원자들을 추첨에 의해 한 명은 선발되고, 다른 두 명은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고 한다. 입학을 위해 쉼 없이 정진하여 왔건만 이제 스스로의 노력과 관계없이 단지 '운'(運)에 의해 개개의 당락이 갈린다는 것이다. 선발된 아이의 성취도 어처구니없지만, 탈락한 아이의 좌절감은 또 어찌 할 것인지.

귀족으로의 관문은 이제 돈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참가 관문은 필경 돈으로서 판가름날 것이다. 하지만 최종 관문은 복불복(福不福) 운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우리의 엘리트 교육에서 금력은 당연한 것이요, 이제 로또의 대운이 바야흐로 횡행하게 될 것이다.

위스타트 마을에 간다. 내 바지가랭이를 잡고 떨어지질 않는 놈. 공기놀이를 하자며 내 손을 잡아끄는 놈. 먼 곳에 있다 달려와 몸을 비비며 아는 척을 하는 놈. 모두 내 어린 자식들이다. 모두를 국제중에 보내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난 단지 내 자식들을 잘 보살피고, 잘 먹이고, 또 잘 교육시키고 싶다. 하지만 이마저도 욕심껏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앞선다.  넉넉한 돈이 없어 난 못난 애비일 수밖에 없다.

위스타트 마을 아이들은 나를 '왔다갔다 아저씨'라 부르고 있다. 이런 호칭에 당황해 한 직원들이 왔다갔다 아저씨가 아닌 '관장님'으로 내 소개를 바꾸어 주곤 했었다. 하지만 난 아이들에게 관장님이라 불리기보다는 '왔다갔다 아저씨'로 불려지길 원했다. 관장은 단지 형식적인 호칭일 뿐이었다. 그러기에 '옆집 아버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아저씨이길 원했던 것이다.

또한 나와 같은 '왔다갔다 어른'이 보다 많아지길 바랬다. 왔다 갔다 하는 수많은 어른들이 분명 우리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어른이 되고, 그 성장을 북돋아 주고, 나아가 귀한 후견인이 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큰 행운이 아닐까. 이는 귀족학교 입시의 대운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의한 '가난한' 대운이 분명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보다 풍요롭게 할 것으로 확신한다. 돈에서 비롯된 내 무력감이 사람에 의한 희망으로 극복되기를 바란다.

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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