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청주지방법원이 지적장애 10대 소녀를 친족들이 성폭력해 온 ‘장애 가족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 논란을 빚고 있다. 재판부는 중형이 불가피한 반인륜적 범죄라는 점은 인정하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를 키워 왔고 피해자의 장애정도에 비춰 앞으로도 피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 할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는 피해자를 두 번 울게 하는 판결이다. 피해자 소녀는 지난 7년간 친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에게 번갈아 가면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당했다. 집행유예 판결로 인해 피해자는 다시 보호라는 명목 하에 가해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는 또다시 가해자 가까이에서 성폭력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는 게 문제이다. ‘성폭행범 보호 아래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가 있는 사회가 과연 정상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성폭력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이다. 이를 통해 피해자가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판부의 판결은 충격적이고 이해 할 수 없다.

청주지법 판결처럼 ‘피해자 양육’등 피고인의 공과를 따져 형량을 덜어준 판례들이 계속 있어왔다. 2006년 10살 처조카를 성폭행한 피고인에 대해 ‘피해자를 10년 동안 부양해 왔다’는 이유로 법정 하한보다 낮은 징역형을, 지난해에는 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초등학교 교사에 대해 ‘성실히 이행한 교직생활’의 이유를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러한 판결은 미성년자나 장애 여성은 보호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것으로 그들의 인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처사다.

특히 우리사회의 약자인 여성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의 실상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항거 할 수 없거나 신고가 용이하지 않는 점 등으로 인간의 기본권인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성폭력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는 피해의 경중에 상관없이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옴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온정적 판결’을 내려 면죄부를 준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은 아직도 약자이다. 하물며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장애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여성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 교육,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관습적인 차별까지도 철폐돼야 한다.

따라서 성폭력 피해 장애인을 무작정 가족에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호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장애여성에겐 현실적으로 자신의 거취에 대한 선택이 제한돼 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어 있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지망 구축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장애여성 피해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쉼터이지만 여기도 최장 9개월 정도만 머물 수 있다. 장애인 공동생활가정(그룹홈)도 있으나 돈을 내야하고, 장애인 사회복지시설도 성폭력 피해자를 겪은 장애인을 세심하게 보살필 여력이 없다.

결국 성폭력 피해자들은 갈 곳이 없다. 성폭력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치료 받아야 함에도 피해자에게 복귀해서 피해가 반복되는 결과만을 낳고 있다.

이제는 사회가 나서야 한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 특히 장애여성을 위해 법률적, 제도적 지원체계가 현실적으로 확보돼야 하며 우리사회는 더 이상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을 통해 그들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음에도 그 권리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뼈 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최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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