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단체의 자기혁신을 역설하는 변 회장의 행보는 가장 큰 관심거리다.

한국농아인협회 변승일 회장의 '출현'은 장애인계로서는 일대 사건이다. 흔히 '지·농·맹'이라고 불리우는 장애인 빅3단체에서 젊고 개혁적인 변 회장의 등장은 우리나라 장애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열쇠말로 기능할 수 있는 주요한 변수다.

장애인1세대 시대가 가고, 2세대 시대를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일 수 있다. 또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으로 양분돼 있는 현 장애인계에서 한국농아인협회가 점한 '독특한 위치'는 변 회장의 행보를 더욱 주시하게 만든다.

당사자단체이면서 장애인을 위한 협의체의 회원단체로 가입되어 있어 양쪽으로부터 '인기상한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 회장은 일단, "장애인 단체의 난립과 갈등, 분파된 모습은 옳지 않다"며 "힘을 합치는 대 통합이 필요하다"고 했다. 4월4일 취임식을 마치고, 4월9일 '농아인 생존권'집회를 앞둔 그를 만났다.

△난립과 갈등은 모두의 손실

변 회장의 트레이드마크는 '변혁'이다. 그의 당선도 '개혁'을 염원하는 농아인들의 바람과 기대라고 할 수 있다. 농아인의 생존권을 촉구하는 4월9일의 집회는 변 회장을 잘 나타내는 첫 번째 '작품'이다. (참고로 그는 전시회를 수십 번 개최한 예술가다)

그는 이미 당선 직후 "불법집회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시위라는 힘의 과시를 통한 권리쟁취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농아인들의 욕구와 불편은 점잖게 '서류'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권은 스스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과 목소리가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도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정부도 변한다. 시위문화는 농아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로써 꼭 필요하다"

일찍이 변 회장은 장애인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1988년 전북의 한 농학교 정상화 투쟁 등에서 '삭발'을 하며 '치열한 전투력'을 나타낸 그는 1997년 에바다재단 사건 당시 사태를 진두지휘하며 '전국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한국농아인협회 변승일 회장은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대표적 장애인계 인사다. 거리에서의 투쟁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그가 왜 시위와 집회의 효용성을 모르겠는가. 변 회장은 '농아인 사회의 개혁'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와 경쟁했던 전·현직 회장 등 농아인계 유력 후보들도 변 회장의 개혁바람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2001년 회장선거에 도전, 쓰라림을 맛봤던 변 회장으로서는 재수 끝에 영광을 안은 셈이다.

"농아인 사회의 위기의식이 나를 회장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돌팔매질을 맞더라도 누군가 앞장서 농아인협회와 장애인단체의 곪은 환부에 칼을 대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상처로 남게 될지 모른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태에서 회장이 됐다.

장애인단체도 알게 모르게 복지부동이 몸에 베어 있다. 새로운 복지프로그램이나 인권증진을 모색하기보다는 기존의 연례적 사업을 리모델링 하는 식으로 답습하고 있다."

△수화를 당당한 언어 '수어'로

변 회장의 농아인협회나 장애인단체의 자가진단은 냉혹하다 못해 가혹하다. 그만큼 개혁에 대한 자신감과 변화의 바람 의지를 내보이는 것이리라. 변 회장이 농아인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히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농아인의 실업률은 20%에 달한다. 취업분야도 농업과 단순노무직에 편중되어 있다. 생계문제도 심각하지만 차별 또한 위험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로교통법, 선거법, 영화진흥법을 개정해야 한다.

농아인들이 인간다운 삶, 행복추구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3대 법률이 꼭 개정돼야 한다. 1종면허 제한이 폐지되고, 참정권 보장을 위한 수화통역과 자막방송이 의무화돼야 한다."

변 회장의 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수화'의 위상정립이다.
 

"수화를 당당한 언어인 '수어'로 인정받고 싶다. 국어사전에도 '수화'가 아닌 '수어'로 표기되는, 법적지위가 확보되는 그 날을 위해 정부에 건의도 하고 범 국민 투쟁도 진행해 나가겠다. 이는 농아인들의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수화통역사 확보, 농아인회관 건립 등도 그의 앞에 놓인 과제다. 변 회장은 현 장애인계의 구도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은 듯 했다.

△기회된다면 국회에 진출 '뜻'

"장애인복지예산을 보자. 장애인은 전 인구의 10%인데, 예산은 고작 3,4천억원에 불과하다. 몇 %인가. 복지를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갈등만 지속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손해다.

버릴 것은 버리고, 화합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 언젠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사회에서 '장애인끼리 싸울 필요 없이 대 통합하자'는 발언한 적이 있다. 참석자들이 당황하더라. 당연한 얘기를 하는데 당황할 필요가 있는가. 당사자중심으로 통합해야 한다."

그는 회장 당선인터뷰에서 '지-농-맹 정신으로 뭉치면 된다'는 말을 했다. 변 회장의 당사자주의 성향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그의 당사자중심 이념을 매개로 한 장애인계 구도 변화도 점치기도 한다.

변 회장은 개별 장애인단체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아 보였다. 사단법인체를 일일이 열거하며 '그들이 하는 일이 뭐냐'며 핏대를 세웠다. 단체명칭에서 '장애인을 빼야 한다'고도 했다.

그동안 '장애인사회에서 농아인이 당해온 소외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분개하기도 했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나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직원채용과정에서 '농아인'이 배려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변 회장은 욕심이 많다.

비오는 날 공화문에서 벌어진 권리찾기운동에서 변 회장은 장애인의 생존권을 주장했다.

"장애인 국회의원이 29명은 돼야 한다"는 그다. 전체 국회의원의 10%다. 지난 2004년 4월 총선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를 신청하기도 했던 변 회장이다. '어렸을 때 꿈이 국회의원'이라고 밝힐 정도로 정치지향적인 그다.

"299명 중 2명의 의원으로는 장애인당사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리 만무하다. 국회 안에서 힘을 갖고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장애인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기꺼이 도전할 생각이다."

'35만 농아인과 480만 장애인의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면 결코 두려울 것이 없다'는 변 회장은 진정한 장애인계 개혁과 장애인 권익향상을 향한 대장정에 첫걸음을 내딛었다.

'회장직'이 명예의 감투도, 얼굴마담 역할도 아니라는 변 회장은 장애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장애인과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과 사회의 단절의 벽을 허무는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변승일 회장 프로필=△1974년 전북농아학교 졸업 △1980년 전북 농아학교 총동창회장 △1988년 전북 혜화학교 정상화 집행위원장 △1989년 한국농아복지회 전북지부장 △1992년 한국농아청장년연합회장 △1992년 늘봄 새마을 유아원장 △1995년 한국농아인권익수호대책위원장 △1997년 월간 '아름다운 손짓' 발행인 △1997년 서울국제장애인복지대회 한국농아인 대표 △1997년 에바다비리재단 퇴진 집행위원장 △1998년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 부회장 △2002년 에바다농아원 원장 △2002년 한국청각장애인예술협회장 △2002년 한국농아인정보화협회 회장 △아름다운 손짓 예술원장
<글/ 정외택 사진/최경훈>

최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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