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가 불편한 지체장애인의 몸에 맞게 높이가 낮게 개조된 싱크대 앞에서 웃어보이는 김정은(41ㆍ지체장애2급)씨. 김씨와 남편 김정안(46ㆍ3급)씨는 작년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독립연대)에서 주택개조지원을 받아 집 밖 경사로를 놓고 실내 화장실 계단설치와 싱크대를 낮게 개조했다.

높은 욕실의 입구는 보행이 불편한 김씨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언어장애로 대화가 어렵거나 이동에 불편을 겪는 장애인들에게 이사는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외에도 중증장애인들이 집을 구하는데 있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장애인이라면 거두절미 손사래를 치거나 운이 좋아 마음씨 좋은 집주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설치할 만한 1층 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영구임대아파트를 신청하지만 공급물량이 적어 이마저도 길게는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김씨 역시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을 꿈꾸지만 “장애인들이 이동이 불편하지 않게 편의시설만 잘 갖춰진다면 아파트 보다 넓은 구조의 빌라나 주택이 오히려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증장애인 전문 부동산 ‘IL 복덕방’
독립연대 최흥수 사무국장은 “처음엔 장애인들 대상으로 복비나 챙기려는 거 아니냐는 등 오해도 많이 받았죠”라며 회고했다. 독립연대는 자립하려는 중증장애인들이 외출자체가 힘들고 접근이 용이한 집을 찾는 것이 힘들다는 점에 착안해 작년부터 신청자들에게 계약 등 이사지원을 돕는 이른바 ‘IL 복덕방’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IL 복덕방’은 집을 구하는 장애인이 독립연대를 통해 신청하면 독립연대의 활동가가 해당 지역 부동산중개소를 찾아가 나온 물건을 장애인 접근이 가능한지, 개조여부를 점검하는 등 입주자의 계약을 돕는 식이다. 작년 2월부터는 온라인 부동산 네트워크 사이트인 ‘부동산 114’와 협약을 맺어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IL 복덕방은 적당한 매물을 찾아주는 것 외에도 경사로 설치나 수도꼭지, 싱크대 등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등 주택개조도 시행했는데, 작년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총 5천만원의 사업비용을 지원받아 1가구당 150만원까지 개조비용으로 사용했다.

집주인들은 이도 그리 반기지 않는 편이다. 최 사무국장은 “1층이라고 해서 찾아가보면 현관과 지면사이에 계단이 있거나 폭이 좁아 경사로 설치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개조를 하려하면 대부분 계약 만료 시에 원상복구를 조건으로 한다”고 전했다.

중증장애인들의 이사는 개조공사를 거쳐야 비로소 완료된다. 사정이 넉넉지 못한 대부분의 중증장애인들의 사정에 맞는 집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마련이라 이런 곳에 장애인들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개조가 필수적이다.

IL 복덕방을 통해 구한 청파동의 집으로 들어서고 있는 김현주씨(38).

작년 한해 ‘IL 복덕방’을 통해 집을 구한 이는 총 22가구. 올해도 사랑과행복나눔 재단에서 총 4천만원의 사업비용을 지원받아 ‘IL 복덕방’ 영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최 사무국장은 “비용에 맞춰 집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며 “좀더 많은 정보가 공유돼 집을 찾는 장애인들에게 집을 찾을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힘으론 역부족…할당제 등 정책적 지원 필요
‘IL 복덕방’을 이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집이나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이기 보다 기존의 집에서 이사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는 오랜 시간 집이나 시설에서 생활한 장애인들이 바로 집을 얻어 생활하기란 경제적으로나 여러 여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이유에서다.

청파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자립생활하는 김현주(38)씨 역시 독립연대의 ‘IL 복덕방’을 통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김씨는 10년의 재활원 생활을 거쳐 2006년부터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인천 계양구의 지인과 함께 살다 지금의 집으로 옮기게 됐다.

독립연대 활동가로 있는 그는 한 달에 기초생활보장수급비와 장애수당 등으로 50여만원을 받아 청파동 집의 월세의 일부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 역시 바램은 영구임대아파트를 얻어 입주하는 것. 이는 독립연대를 통해 함께 생활하는 유용비, 김길면 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설거주기간이 무주택기간으로 인정되지 않아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하기도 어렵고 실제로 혼자서 집을 구하기란 경제적으로도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장애인 당사자들 힘만으로는 자립생활이 요원하다.

독립연대 윤두선 회장은 “탈 시설 혹은 집에서 나와 자립하고 자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임대주택 할당제 등 실질적인 주거정책이 필수적”이라며 “이와 더불어 체험홈이나 공동생활주택과 같이 자립생활을 훈련할 수 있는 제도도 뒷받침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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