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이 수년간 투쟁한 결과로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법률(장차법)’이 지난해 4월 11일자로 본격 시행됐다. 장차법 시행이후 대폭 증가된 차별 진정으로 인권위의 진정처리시간 지연은 공공연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행정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정부가 장차법을 약화시키는 개정안을 내놓고 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장애계의 대응도 만만찮다. 장애당사자로서, 장차법의 태생과 비슷한 시기에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최경숙 위원을 만나 장차법에 대한 올바른 시행과 최근 불거진 인권위 축소논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최경숙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먼저 인권위가 다루는 사안들은 어디까지나 법의 잣대를 기준으로 판단되는데 관련법규에 관한 기본적인 소양을 쌓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전문위원직을 수행하면서 여기에 내가 있는 이유를 되새기며 장애인의 문제뿐아니라 소외계층의 문제를 대변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정리해 나갔다. 법적인 부분을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니나 전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인권위 내의 인권과 관련해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문 법조인들이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해는 사회초년생과 같은 마음으로 치열하게 보냈다. 또한 남은 임기를 어떤 이슈들에 집중해 가치 있게 보낼 것인가 정립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장차법 제정시기와 맞물리면서 부담감도 컷을 것 같다
물론 그렇다. 장애인차별시정기구로서 장애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위원의 필요성에 의해 임명제의를 받은 것이라 의의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많았다. 그러나 2007년 당시는 한 장애여성운동단체의 대표 임기가 만료돼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시기와 잘 맞았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위원직을 수행하게 됐다.

-당시 장애계가 위원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나 
장애인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사자주의와 한 기관의 행정적 결정을 함에 있어서 형평성을 지키는 기준이 있나
분명 그것은 있어야 한다. 사실 매 순간 선택에 있어서 고민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한해 차별사건과 위원회 사안들을 다루면서 한 가지 사안이라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예로 들면 장차법의 ‘합리적인 차별’은  그 차별시정으로 인해 피진정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경우에는 차별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는 한 가지 사안을 다룰 때 다양한 측면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차별결정이 각각의 사회구성원들에게 어떤 파급효과나 영향력을 주는 가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항상 장애인을 포함한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판단내리는 편이다. 설사 그것이 법의 기준으로는 적절하지 않더라도 약자의 편에서 주장하곤 한다. 난 법률가는 아니니까.(웃음) 이것이 때로는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고 소수의견이 돼서 다른 방향으로 결정이 날 수 있으나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데서 이 또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인권위 차별시정인력 부족문제가 제기되는 현 시점에서 행안부의 인권위 축소방침이 알려지고 있는데
장차법이 시행된 후 인권위 설립 이래로 가장 많은 진정사건이 발생하고 있고 장차법과 관련된 새로운 업무들도 생겨나 7명의 인력이 처리하기에는 버거운 실정이다.

또한 시정팀은 정신장애인과 관련 국가보고서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 인권위 내외부에서 인력부족문제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정확한 인원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올해 초에 있을 내부인사이동을 통해 자체적으로 인력을 충원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조직개편 방침은 인권위의 행정인력만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인권위의 역할과 기능을 축소하는 것이다. 현재 계속적인 협의과정에 있으며 행안부 측에서도 차별시정인력에 대한 부족현상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조속한 협의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장차법의 올바른 시행과 장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라면
먼저 장차법이 제대로 홍보가 되어야 한다. 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장차법의 취지와 입법목적에 대해 충분히 알려져야 한다. 시행초기인 4월에 실시한 조사를 보면 90%에 이르는 국민 대다수가 장차법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후 인권위와 각종 단체들이 홍보를 통해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으나 아직 부족하다.

인권위는 법의 의의를 중심으로 홍보를 한 반면 법무부는 위반 시 처벌기준을 중심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특히 기업의 입장에서 장차법이 오히려 장애인들의 사회진출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장차법의 입법 취지 등 법의 긍정적 요소와 순기능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와 함께 장차법의 입법취지를 알리는 한편 법의 순기능과 긍정적인 면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해 나갈 방침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국가와 지자체가 장차법 시행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한 편의제공의 경우 올해부터 각 분야에서 단계적으로 의무가 지어지는데, 시행년도에 적절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시행년도는 어디까지나 최종시한이다. 이 시기에 적절한 제공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진정이 발생하면 권고, 시행명령 등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준비의식이 부족한 곳이 많은 것 같다. 이와 함께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예산배치도 이뤄져야 한다.

-장차법이 정착된 이상적 사회상은
장차법이 지향하는 입법목적은 궁극적으로 차별의 제거다. 장애유무와 성별을 떠나 우리 사회에서 한 개인이 인격체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그동안 수많은 장애인들의 운동과 투쟁으로 이제 어느 정도 장애인들도 자기결정권을 담보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장차법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장착돼 장애인들이 꾸는 다양한 꿈을 실현시키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장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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