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웅 회장 /  대한노인복지후원회 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

엄정웅 회장

“사회체면 운운하며 마지못해 불우이웃돕기성금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목을 의식한 봉사가 아니라 스스로 이웃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실천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항상 그늘 진 곳을 찾아 빛을 밝히는 데 한 평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대한노인복지후원회 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 엄정웅 회장(67)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항상 일요이면 그는 평상시와는 다른 새로운 일과가 시작된다.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을 만나러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엄 회장이 이처럼 매주 일요일 소년소녀가장과 불우노인에 사랑의 손길을 전달한 것이 벌써 28년째다.

 

그가 이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82년부터다.

 

엄정웅 회장은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으나 6.25전쟁 때 부모를 잃고 두 동생과 함께 고아로 세상의 온갖 냉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왔다. 문전걸식과 때로는 며칠을 굶어가면서 인정이 메말라 버린 사회의 그늘진 곳에 남겨져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해병대 시절 알게 된 현재의 부인과 67년 결혼해 처의 고향인 제주도에 정착을 했다. 연탄수레를 끄는 막노동하며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즈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후원자로부터 큰 딸의 후원금을 다달이 보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2008년 5월 4일 제주 보육원 방문

 “나의 어린시절 지독하게 겪은 배고픔의 경험 탓일까. 내 인생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기억이기에 언젠가는 밥술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면 나와 같은 불행한 처지 속에 살아가는 어려운 이들에게 작은 사랑이나마 전하겠다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1982년 음료수 도매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소년소녀가장과 무의탁 노인들을 알게 돼 이들과 정을 이어온 것이다.

 

“어린시절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밥이라도 원 없이 먹어보는 것 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밥술이라도 먹어보는 날이 오면 힘들게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어느덧 30년을 지킨 것이다.

 

엄 회장이 이같이 소외된 곳에 빛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가족의 힘이 컸다.

2003년 12월 2일 제주시 건업동 윤소라 소년소녀 남매 점퍼.구두.신발 전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원망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내가 저보다 더 적극적입니다.”

 

매주 일요일만 되면 엄정웅 회장 집은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엄 회장 부부가 무의탁 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게 나눠줄 김치를 담그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뿐 아니라 쌀을 비롯해 간장, 된장, 라면 등 갖가지 부식과 학용품을 봉고차 뒤칸에 가득 싣느라 분주하다.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아들처럼 정을 주고 말벗이 돼 주기를 벌써 28년이다.

 

30년 가까이 엄 회장이 후원한 곳은 300여 가구에 이른다. 지금도 100여 가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단순히 물질적인 후원으로 그치지 않는다.

 

일요일이면 도내 곳곳을 일주하며 소년소녀가장을 방문, 1주일간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을 챙겨주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공부도 봐주고 있다.

 

한번은 노인네가 세상을 떠나 의지할 곳 없는 두 명의 아이가 살고 있는 곳을 김치를 싸들고 들낙거리다가 이를 수상히 여긴 마을 이장이 엄 회장을 뒷조사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후원을 받은 아이들은 어느덧 성인이 돼 결혼을 한 뒤에도 아이를 안고 찾아오기도 한다.

 

“소년소녀가장이 이제는 어이의 부모가 돼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거나 직접 찾아올 때면 모든 근심걱정을 잊게 되고 마음도 뿌듯합니다.”

 

예솔이라는 한 소녀가장은 편지에서 “제가 4학년인데 학력평가에서 반에서 2등을 했어요. 1등을 할 수 있었는데 참 아깝네요. 다음에는 꼭 1등을 할께요”라며 사소한 일상까지 보고하기도 했다.

 

이 학생은 이어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신발이 작아 제게는 맞지 않으니까 다시 바꿔 달라”는 애교 섞인 편지를 보내 엄 회장을 당황스럽게 했다고 한다.

 

그의 선행은 널리 알려져 방송과 각종 언론을 장식했다.

 

1989년 ‘세상사는 이야기’ 1999년에는 MBC ‘칭찬합시다’ 주인공으로 출현해 음료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는 모습이 방영됐다.

 

특히 불우이웃 한명을 돕기 위해 점심끼니를 거르는 그의 인생이야기에 안방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나에겐 외로운 여생을 사회의 음지에서 황혼의 쓸쓸함을 간직한 채 기약없는 생을 연명해 가는 무의탁 노인들이 계십니다. 비록 친아들 이상으로 보살펴 드리진 못하지만 조그만 정성이나마 이 외로운 노인분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게 행복합니다.”

 

고아로 자라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죽어서 돈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게 신념이라는 엄 회장.

 

경제적으로 처지가 나아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마음만이라도 외로운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뜻에서 시작한 것이기에 이제는 끊을래야 끊을 수없는 끈끈한 정이 됐다.

 

“이들과의 인연을 통해서 또 다른 인생을 체험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힘에 부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엄 회장은 “사회체면 운운하며 마지못해 불우이웃돕기성금을 낼 필요는 없다. 이목을 의식한 봉사가 아니라 스스로 이웃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실천할 때 가장 아름답다”며 기업들의 즉흥적인 사회공헌에 일침을 가했다.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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