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만5000명의 부정수급자를 탈락시키는 것을 전제로 2009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을 책정하고, 진단서를 제출하고 근로무능력자로 인정받은 환자들을 부정수급자로 의심이 가는 집단으로 지목하였다.

2008년의 지침에는 별도의 근로능력유무 판정을 요구하지 않고 단지 3개월 이상의 치료, 요양, 혹은 재활을 필요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의사의 진단서만 있으면 근로무능력자로 인정해 주었으며, ‘추정소득 부과 시에는 반드시 대상자와의 상담을 거치고 소명기회를 부여하여 부당한 소득부과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진단서에 ‘근로능력 없음’의 조건을 추가시켰다. 의사협회가 진단서에 ‘근로능력 없음’이라는 소견을 적지 말도록 의사들에게 안내함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는 의사들에게 무리하게 근로능력 유무를 판정하도록 한 지침을 철회하였다.

하지만 보건복지가족부는 제도를 2008년 수준으로 완화시킨 것이 아니라. 일선의 복지담당공무원에게 ‘근로활동 불가라는 명시 여부와 관계없이 진단서의 내용 및 본인과의 면담 결과 등에 따라 근로능력 여부를 판단하되, 필요한 경우 자문의사 또는 다른 의료기관(지방공사의료원 및 보건기관 포함)에 재진단을 의뢰하는 등의 방법을 적극 활용하여 선의의 피해자 또는 반대로 불합리한 수급자가 선정되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지침을 시달하였다.

일선 공무원은 지침이 아무리 비합리적이더라도 거부할 힘이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일차로 담당공무원에게 진단서를 믿지 말고 근로능력이 있다고 의심이 가는 환자를 가려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더 엄격해진 제도를 그대로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적극적으로 자문의사 또는 다른 의료기관(지방공사의료원 및 보건기관 포함)에 재진단을 의뢰하도록 했는데, 이는 자문의사라는 새로운 직종을 만들거나, 복지부의 입김이 작용되는 지방공사의료원 및 보건기관을 동원하여 민간의사가 발급한 진단서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으로 3개월 이상의 진단서를 발급받은 환자를 얼마든지 의심하여 탈락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

이 지침은 이제까지 의사가 했던 ‘근로능력 판단’을 복지담당공무원이 일차로 하도록 하고, 공무원이 의심되는 환자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되는 자문의사나 지방공사 의료원 및 보건기관으로 보내서 진단서를 재발급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처사는 민간병원 의사의 진단서를 불신한다는 것으로서 의사의 전문성과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런 방법으로 병으로 일을 할 수 없는 가난한 환자의 유일한 밥줄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중단시키고, 의료비를 더 부담시킬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초기에는 1개월 이상의 의사진단서가 발급된 환자를 근로무능력자로 인정해 주었는데, 이렇듯 기준을 점점 더 까다롭게 규정함으로써 가난한 환자의 생존권의 침해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12일 시민단체 대표 면담 시에 복지부 관계자들은 지침을 작년 수준으로 완화시키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렇듯 작년수준보다 훨씬 더 강화된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것은 분명히 약속위반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34조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자에게 불리하게 제도를 변경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러한 정부의 규제강화는 위법이다.

시민단체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800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보건복지가족부도 160만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이 실업대란 시기에 복지사각지대를 줄일 정책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일단 모든 환자를 잠재부정수급자로 몰아붙인 후에 마녀사냥에 나서고 있다.

만약 이력서에 ‘3개월의 치료나 요양을 필요로 한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발급되었으나 정부가 근로능력이 있다고 규정했다는 증명서’를 첨부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일자리를 줄 고용주가 있을까?

노동시장에서 근로능력 여부는 복지공무원이 아니라 고용주가 판단한다. 고용주가 채용해 주지 않는 실업환자는 근로무능력자로 보아야 한다. 설령 근로의욕을 해칠 정도로 충분히 지급되지도 않는 쥐꼬리만 한 정부지원 생계비를 받으려고 노동을 기피하는 환자가 있다고 치더라도, 모든 환자를 잠재 부정수급자로 일단 몰아 놓고 적격자를 가리는 정책은 비인간적이다.

현재 복지공무원은 업무량에 비하여 턱없이 모자란다. 이러한 가운데 의사가 거부한 근로능력판정을 복지공무원에게 떠넘긴 후, 의심환자에 대하여 자문의사나 공공병원의 진단서를 재발급 받도록 한다면 적발되는 부정수급자에 비하여 부정수급자를 가려내기 위한 행정비용이 더 많이 들 것이다. 비용효율성을 위해서도 무리한 부정수급자 가려내기 정책은 철회해야 한다.

현재 복지병 방지를 목적으로 근로장려세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복지병 환자로 의심된다고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는 근로장려세제 혜택을 주지 않고 있다.

정부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난한 환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이 있다면, 근로능력기준 강화라는 채찍으로 수급권을 강제로 박탈시키기 보다는 근로장려세제 혜택이라는 인센티브로서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가난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정책을 철회하라.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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