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철 제5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자질 논란 속에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거센항의에도 불구하고 결국 취임을 강행했다.

현 인권위원장은 20일 오후 인권위에서 취임식을 열고 “국가인권기구의 정신은 바로 독립성이라는 원칙에 구현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위원회를 둘러싼 적잖은 논란에 대해 제가 오랫동안 쌓은 경험과 균형감각으로 합리적인 대안들을 찾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인권이 존중되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을 때 그 사회는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가 있다”며 “빈곤층,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보호에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현 위원장은 이어 “대한민국이 국제 인권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인권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인권의 경험과 현장성, 문제의식을 가진 인권단체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긴장하면서도 때로는 협력하는 인권 동반자 관계로 다가설 것”이라며 “위원회를 성원하고 때로는 매섭게 비판하면서 지켜봐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날 치러진 현 위원장의 취임식은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취임식 저지로 아수라장이 됐다.

2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 활동가들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현병철 인권위원장 취임에 항의방문에 경찰들이 입구를 막고 출입을 봉쇄했다.

이날 취임식에 앞서 인권위 앞에서는 인권단체들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현 위원장에게 13 항목에 달하는 공개질의서를 전달하기 위해 모였으나 경찰이 출입문을 봉쇄하는 바람에 산발적인 몸싸움이 벌어졌다.

또 위원장실 앞에서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현 위원장의 입장을 저지하자 위원장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사무총장실로 들어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현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취임사에서 다 밝히겠으니 정상적인 업무에 협조해 달라”며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취임식에서도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장애인들의 자진사퇴 요구와 단상진입시도 속에 10여분짜리 취임사를 낭독하고 자리를 떠났다.

앞서 17일에도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장애인들이 위원장실을 점거해 인권위는 결국 취임식을 20일로 미뤘었다.

현병철 위원장에 대한 자질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은 17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증되지도 않은 인물을 인권위원장에, 그것도 시급히 임명하는 것은 졸속임명”이라고 비난했다.

정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병철 학장을 검증할 수 있는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국민과 시민사회의 합의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인권위원장은 인권에 대한 전문성 및 인권지향성을 갖춘 인물로서 인권위의 독립성을 수호할 의지가 확고해야 하며 청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여진 연석회의 활동가는 “현 학장은 민법을 전공한 교수로 인권에 대해선 연구 논문 한 편 발표한 적 없는 문외한”이라며 “현 학장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권위원장하면서 (인권에 대해) 배우겠다고 밝혔지만 위원장직은 배우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  학장이 위원장으로서의 적절성을 스스로 판단, 물러나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현 위원장의 논문 중복게재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17일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현 위원장이 2002년 ‘법학논총(한양대 법학연구소)’ 제19집에 게재한 논문 ‘무효와 취소의 이중효와 상대적 무효’의 많은 문장이 1986년 ‘재산법 연구’ 제3권 1호에 실린 ‘무효와 취소의 이중효’와 중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법학논총 논문의 제2장 ‘이중효 이론’은 재산법 연구 제2장과 각주까지 동일하게 서술돼 있다.

2002년 법학논총 논문의 프랑스 민법과 국내 민법 관련 4쪽가량의 서술은 98년 비교사법 9호에 게재된 논문 ‘무효’의 서술을 전재했다. 또 93년 민사법학 9·10호에 게재된 논문 ‘급부부당이득반환청구권’은 91년 법학논총에 실린 동일한 제목의 논문을 사실상 요약·전재했다. 현 위원장은 두 경우 모두 기존 논문을 인용·참조했다는 사실을 논문에 밝히지 않았다.

학술진흥재단 ‘논문표절 가이드라인’ 제정에 참여한 바 있는 한 교수는 “과거에는 ‘관행’으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전형적인 중복게재의 사례”라며 “2개의 학술지에 시차를 두고 게재했더라도 주석이나 적절한 면에 재인용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면 중복게재”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지난 16일 공석인 인권위원장에 현병철 한양사이버대 학장을 내정하고 다음날인 17일 오전 임명식에 이어 오후에는 인권위에서 취임식을 치르기로 했었다.

한편 지난 3월5일 김재균 의원이 발의한 ‘인권위원장 임명 시 국회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의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 개정안은 소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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