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학교밖 청소년도 포함…돌봄·생계·의료·학습지원 연계

김부겸 국무총리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6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장애, 질병 등을 앓고 있는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이나 청년, 즉 가족 돌봄 청년(일명 '영 케어러'·Young Carer)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첫 실태조사가 이뤄진다.

홀로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청소년, 청년이 국내에 얼마나 되는지 실태를 파악해 이들을 기존 복지제도와 연계해 지원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자체·학교·병원을 연계한 공적 안전망을 통해 돌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20대 청년이 가족 간병에 대한 부담으로 돌봄을 포기해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자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범부처 차원에서 처음으로 가족 돌봄 청년 대책 수립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14일 김부겸 총리 주재로 열린 제6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했다.

가족 돌봄 청년은 장애, 정신·신체 질병, 약물 등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청년, 청소년을 지칭한다. 정부는 특히 청소년과 청년기에 시작된 돌봄 부담이 향후 진로·생계 등 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특수성을 고려해 이러한 지원 대책을 고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대구에서 20대 아들이 치료비에 부담을 느껴 뇌출혈로 입원 중인 아버지를 퇴원시키고, 이후 돌봄을 포기해 사망에 이르게 한 '간병 살인' 사건 이후 가족 돌봄 청년 지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졌다.

이수완 복지부 청년정책팀장은 이날 사전 설명회에서 "기존에는 '돌봄 대상자'를 위주로 했지만, 이번 대책은 '돌봄 제공자'에 국가적 차원의 첫 번째 접근"이라며 지원대책 의의를 소개했다.

이 팀장은 "가족 돌봄 청년이 자신의 미래를 현재의 돌봄과 맞바꿔 생애 전반이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거나, (돌봄 부담이) 계층 이동의 칸막이로 작용하면서 전반적인 사회 신뢰도 하락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족 돌봄 청년의 경우, 기존 복지대상자와 달리 이를 구체적으로 명명한 '정의' 자체가 없어서 지자체에서도 무엇을 지원하고, 어느 기관과 연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빈번했다.

배금주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일반적인 돌봄 제공자와 달리 이 시기의 청년들은 기존 복지 전달 체계에 바로 포착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학교·병원 체계에서 대상자들을 발굴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 대구 간병살인 사건이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대책 마련이 늦었다는 지적에는 "당사자를 비롯해 사회복지사나 교사, 병원 간호사, 관계자 등을 통해 이들이 복지 체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협의하는 과정에 시간이 소요됐다"며 "다만 현황조사 전이라도 대상자로 확인되는 청년에 대해서는 기존 제도 지원과 바로 연결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는 지원대책의 첫 단계로 다음달부터 중·고등학생과 학교 밖 청소년, 대학생·일하는 청년(34세까지) 대상으로 전국적인 실태조사에 들어간다.

19세 미만인 중·고등학생과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서는 학교나 지원센터, 19세 이상 대학생과 일하는 청년은 대학이나 청년센터를 통해 설문지 URL을 배포할 예정이다. 설문지에서는 구체적으로 돌봄의 내용, 돌봄 시간, 돌봄으로 인한 어려움, 필요한 제도 개선사항, 가족 돌봄 청년 생활 애로사항 등을 중점적으로 묻는다.

김충환 복지부 인구정책총괄과장은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와 관련해 "현재까지는 가족돌봄청년의 규모도 알 수 없었다"며 "신학기 시작 시점과도 맞춰서 학교를 중심으로 이를 파악하고자 시행 일정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기존의 복지 사각지대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 등을 활용해 한부모,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장 등 세대 정보와 복지수급 정보를 토대로 추정 사례를 발굴하는 방식도 동시에 진행된다.

예를 들면 건강보험 의료 명세서 중 장기·만성 질환 진료내용이나 요양일수, 종합장애등급 코드 등으로 돌봄 대상자를 선별한 뒤 가족 구성원 중 13∼34세 청소년·청년이 있는 경우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발굴된 가족 돌봄 청년은 기존의 제도를 몰라 지원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5월부터 각각의 상황에 맞는 돌봄·생계·의료·학습지원 제도를 안내·연계한다.

신규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원대책은 가족 돌봄 청년 지원 '선도 지자체'의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를 살펴보고 전국으로 확대한다. 일례로 현재 선도 지자체인 서울 서대문구에서는 마을변호사·행정사를 가족 돌봄 청년과 연결해 행정·법률 업무를 지원하고 있고, 이들이 자기 계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인맞춤돌봄서비스 특례 시범사업안 등을 마련한 상태다.

이에 더해 학계와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가족 돌봄 청년을 대상으로 한 소득 보장 제도에 대한 필요성도 검토할 예정이다.

지자체-병원-학교 중심으로 한 가족 돌봄 청년 관리체계도 구축한다. 병원의 경우 의료사회복지사, 학교의 경우 교육복지사 및 교육복지 담당자가 상담을 통해 가족 돌봄 청년에게 필요한 돌봄 서비스, 복지·정서지원 등을 제공하고 지원 가능한 유관기관과 연결한다.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교, 병원 등에서 발굴된 대상자들에 대해 각종 서비스를 연계하는 체계를 구축해나갈 예정이다. 다만 이에 필요한 교육복지사·의료사회복지사 등 인력 충원에 대한 세부 조치는 향후 구체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공적 돌봄을 제도화하기 위한 특별법을 마련해 사회적 인식도 높일 계획이다.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선 가족 돌봄 청년의 제도적 정의와 실태조사의 근거, 기존 제도의 특례 설정, 지속적 지원 조치 마련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에 대한 의무 규정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러한 지원 대책을 포괄적으로 준비·시행하기 위한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내년도 예산 확보에 나선다.

박찬균  allopen@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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