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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성범죄, 이제 저항은 물론 예측까지 해야 하나?
이유정 기자 | 승인 2015.08.19 10:08

치마가 짧아서, 밤늦게 돌아다녀서, 술 취한 채 택시를 타서 등.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런 통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18일), ‘예상 가능한 성추행’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강제추행이 아니라며 성폭력 범죄를 ‘예측 가능성’과 ‘피해자의 저항’의 정도로 판단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해당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형부로, 2004년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자를 성추행하고 2012년에는 피해자 앞에서 성기를 노출하였습니다. 또한, 2013년 7월에는 자신의 집 안방에서 잠을 자려고 하는 피해자의 몸을 만지고, 피해자가 성추행을 피하려고 옆방으로 옮기자 따라가 이불을 덮어주는 척하며 또다시 성추행하는 등 긴 시간 동안 수차례 성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는 2012년 범행과 2013년 7월 첫 범행 이후 연속된 범행에 대해 무죄로 결론지으며 최종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2012년 범행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꼈을 수 있지만, 성적 자기 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013년 두 번째 범행에 대해서는 첫 번째 범행 이후 피해자가 추행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사건 이후 집을 나가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강제성이 없다고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성폭력의 강제성을 판단할 때 피해자의 저항 여부 등 대응 행동에 대한 잣대를 들이대며 피해자의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수반하지 않으면 성폭력이 아니라는 생각. 이번 판결은 성폭력의 의미를 축소·왜곡하는 최협의적 해석을 기본으로 장착한 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피하거나 저항을 했어야 한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문제를 더욱 강화시키고 ‘강제성이 없으면 기습추행’이어야 한다는 성폭력범죄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탄생시킨 최악의 판결 중 하나입니다.

서울서부지법의 이번 판결은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라는 본질을 망각하며, 가족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범죄행위에 대한 예측과 적극적인 저항을 요구하는 잘못된 인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성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낮은 인식수준을 개탄합니다.  

2015. 8. 18
한국여성의전화

 

이유정 기자  jenny1804@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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