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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엮어 가는 따뜻한 ‘품’눈물과 인내를 먹고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우린 한가족이에요”
김은미 기자 | 승인 2005.07.13 21:22

가까이 있는 듯 하면서도 멀고, 먼 듯 하면서도 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족. 마치 생명을 키우는 탯줄 같다. 그만큼 가족은 삶을 지탱해주는 큰 힘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경제적 어려움, 폭력과 알콜 등 다양한 이유로 갈수록 무너져 가는 가정. 포근함과 든든함보다는 억압과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게 최근의 풍경이다.


이런 근심 많은 지붕들 위로 따뜻한 둥지를 만들어 가는 곳이 있다.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친부모 자식으로, 형제지간으로 대안 가정을 이루며 지내는 ‘그룹홈’이 바로 그곳. 지난 90년대 후반 가족관계가 급변하면서 새로운 가족형태로 등장했다. 걷다 뛰다 숨이 차 오를 때 한동안 앉아 숨을 고를 수 있게 하는 나무밑둥 같은 그룹홈. 마음으로 엮어 가는 이곳에는 피를 나눈 가족 못지 않은 살가움이 묻어났다.

 

‘믿음’이란 ‘젖’ 물려 희망꾼 키워내


오월 햇살에 새샘터 앞마당 연둣빛 잎사귀들이 제법 귀엽게 자랐다. 성격도 사연도 제각각인 8명의 아이들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새샘터. 봄볕같은 신부님과 교사들의 관심에 이곳 아이들의 마음에도 여린 새살이 돋고 있었다.


경기도 김포에 위치해 있는 새샘터. 지난 98년 문을 연 이곳은 마음 둘 곳 없는 아이들의 든든한 보금자리다. 오랫동안 가출해 약물, 절도, 폭력 등으로 한때 비행 청소년으로 불리던 아이들이 이곳에서 마음을 녹여 가고 있었다. 이곳에 온지 2년째인 희주(18). 그동안 방황하다 검정고시를 보기로 결심하고 얼마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작은 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농업 고등학교에 가려고요.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만해도 별 생각 없이 지냈어요. 그런데 지난해 실상사에서 농사체험을 했어요. 몸은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마음은 참 평온하더라고요. 나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발견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믿어주고 격려해 준 신부님과 선생님이 있어 참 감사해요.”


보통 그룹홈은 보호양육을 중심으로 한 대안가정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학교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아 대안교육까지 진행하고 었다.
이곳의 하루는 새벽 6시부터다. 오전에는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오후에는 2시부터 5시 30분까지 공부를 한다. 내심 짜여진 일정에 아이들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샘터 아버지인 김영근 신부는 “나태하지 않도록 일부러 낮 시간은 학교느낌이 들게 하고 있어요. 하지만 학교처럼 딱딱한 교육이 아니라 일상생활 훈련, 생태환경 교육, 역사, 인권, 그리고 참나 찾기 등 아이들의 삶에 필요한 교육 중심이에요”라고 말한다.


이외 시간에는 일반 가정처럼 자유롭게 지낸다. 특히 이곳에는 교사도 있고, 아버지, 어머니, 형, 동생들이 함께 지내고 있어 정을 나누고 배운다.


김 신부는 “아이들이 얼마나 느낄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따뜻한 사랑을 충분히 느꼈으면 좋겠어요. 따뜻함뿐 아니라 밝은 체험을 많이 하게 하고 싶어요. 이미 아이들은 어두운 체험을 많이 했거든요. 긍정적이고 삶을 살리는 밝은 가치를 심어주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통 이곳에 온 처음 1∼2년 동안은 폭력과 문제행동 등 사회에서의 모습이 그대로 나오기 일쑤다. 이때는 이곳에 대한 아이들의 불평도 거침 없이 쏟아진다. 오랜 상처에 이미 마음이 옹이처럼 굳어져 제대로 못 보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지 보름 됐다는 이현준(가명·20)은 “신부님은 너무 지루하고 잔소리쟁이예요. 우리 속마음까지는 잘 몰라요. 외박도 잘 안 시켜주고 전화도 잘 못하게 해요”라는 둥 하고 싶은 것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


김 신부가 이런 아이들의 불평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한창 혈기의 아이들에게, 그것도 자유분방하던 아이들에게 규칙적인 생활과 규율을 답답하게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럴 때마다 교사들은 아이들과 끊임없이 얘기를 한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맥을 집어간다. 그리고 때론 반쯤 혼내고 반쯤 얼러가며 아이들의 마음에 ‘믿음’이란 ‘젖’을 물린다.


김 신부는 “진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진실에는 마음을 열게 하는 절절함이 있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지내다보면 서서히 안정을 찾는데, 이때 뭔가 해보고 싶어해요. 그때 진로를 도와주고 있어요. 그렇게 4∼5년 정도 지내서야 비로소 서로 간에 신뢰가 끈끈이 주걱처럼 돼요.”


‘물이 새롭게 샘 솟는다’는 의미를 지닌 새샘터. 이곳의 작은 소망은 아이들이 내면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펼쳐갈 수 있도록 대들보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이곳 아이들 중에는 부모체험이 없는 아이들이 많아요. 이는 집에 대들보가 없으면 무너지는 것처럼 마음을 기댈 중심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에 봉착하면 금세 좌절하고 꼬리를 내려요. 그럴 때마다 다독이며 대들보가 되어주고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도 이곳을 늘 ‘집’이라고 여겨요. 여러 모로 메말라 있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깊은 사랑을 체험하고 나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새샘터 가족들의 눈물과 인내, 사랑과 믿음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 서로의 마음을 엮어 희망의 천을 짜고 있었다.

 

꿈을 이루는 별동네 ‘은행나무골 우리집’


산들산들 꽃바람 부는 일요일 오후. 은행나무골 우리집에도 한아름 여유가 찾아들었다. 평소 학교에 다니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 한을 오늘 다 풀려는 듯, 아이들은 벽에 등을 기대며 TV를 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밖에서 놀기도 했다. 여자아이들은 숙덕숙덕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는지 방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손님이 왔다는 말에 잠깐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환한 인사를 짓더니 다시 놀이에 정신이 없다. 13명의 아이들이 한가족을 이루고 있는 은행나무골 우리집. 이곳에서 아이들은 때론 언니로 형으로 마음을 맞추며 자라고 있었다.


성남 은행동에 자리잡은 은행나무골 우리집. 지난 93년 문을 연 대안가정이다. 이곳 대표인 김광수 목사가 지난 89년 공부방을 운영하다 93년에 오갈데 없는 아이들 한두 명을 데리고 산 것이 지금의 그룹홈까지 이어졌다.


김광수 목사는 “처음 시작할 때는 알콜중독, 약물, 도벽 등이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5분만 자리를 비워도 사고가 일어났어요. 뭐, 과도를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양말 옆에 끼워놓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한 아이가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진학을 하면서부터는 학습하는 분위기로 확 바뀌었어요. 공부바람에 돈이 많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꿈이 생겨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2년 전부터 이곳 식구가 된 성주(18)와 성민(15)이 형제. 가끔 혼자 지내고 있을 아빠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이곳 생활에 만족했다. 교사가 되는 게 꿈인 성주는 “중 3때 담임이 참 따뜻하게 잘 해줬어요. 저도 그런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요. 전하고 달리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면서 성적도 많이 오르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아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한 가정을 이룬지 10년이 된 이곳. 말 그대로 이제 한 가족이었다.
김 목사는 “일반 집과 똑 같아요. 저학년은 좀 나은 편인데, 중고등학생이 있다보니 거의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아침 일찍 나가서 밤 11시쯤에 오고, 주말에는 도서관 간다고 나가고. 저라도 신경을 써야하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저희는 이렇게 살아요. 그냥 한 식구죠”라고 말한다.


가족에 대해 그는 “꼭 혼자 풀어야만 하는 과제가 아니라, 혼자서 어렵다면 사회가 더불어 함께 가꿔갈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아이 좀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곳이 많아요. 하지만 작년부터 인원이 많아서 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만큼 많은 아이들이 따뜻한 대안가정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거예요. 지역 아이들에게 많이 관심을 써 줬으면 좋겠어요.”


대안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늘 웃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으로 크지만, 그 안에는 꾸지람도 있고 격려도 있었다.


“아이들이 원한다고 다 할 수 없어요.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마음 한 곳에는 상처로 인한 불편함이 있어요. 게다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한데, 사춘기라 얼마나 갖고 싶은 것도 많겠어요. 용돈도 천원에서 삼천원 정도 밖에 못 줘요. 미안하죠. 게다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많이 쏟아줘야 하는데, 아동청소년그룹홈협회 대표를 맡고 있다보니 신경을 못써요. 그래도 불평 없이 지내줘서 고맙죠. 아이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우리집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이곳이 좋은 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가진 건 나누고 모자란 건 도움 받고


올해 1월, 4명의 장애여성들이 오봇하게 가정을 꾸렸다.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한사랑마을 자립홈이 바로 그곳. 자립을 위한 한 과정으로 꾸려진 대안가정이다.


한사랑마을 최연진(26) 사회복지사는 “몇 년 전부터 우정사업본부의 후원을 받아 장애인 시설인 한사랑마을에서 자립에 의지가 있는 분들에게 자립생활 교육을 하게 했어요. 그러다 올해 직접 지역사회에서 대안가정을 꾸려 자립생활을 해 볼 수 있도록 자립홈을 마련했어요”라고 설명한다. 


지은(25), 소희(25), 주현(25), 은정(24). 이들은 혈육은 아니지만, 같은 시설에서 근 20년을 같이 자라 실제 친자매와 진배없이 지냈다.


맏언니 같은 주현 씨는 “처음에는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내심 겁도 나고 두려움이 컸어요. 다들 중증 장애인이잖아요. 그런데 일단 지내보니까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재밌고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어 내심 자신감도 생겨요. 무엇보다 10명 이상 시설에서 지내다 4명이 가족을 꾸리고 지내니까 좋아요”라고 말한다.


말은 자유롭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은 씨와 은정 씨. 몸은 비교적 자유롭지만, 의사소통이 불편한 소희 씨와 주현 씨. 작은 공간에서 이들은 서로의 단점들을 보완하며 소박한 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소희 씨는 “각자 역할이 다 있어요. 지은이는 밥하고 화장실 관리, 물론 밥을 풀때 다 흘리지만요. 은정이는 빨래 개기와 청소기 밀기. 저하고 주현이는 설거지하고 반찬을 담당하기로 했어요. 역할을 분리하기는 했지만 사실상은 다 같이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장애 때문에 이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은 로또기금의 도움으로 일주일에 3번씩 가사도우미 서비스로 채워 나갔다. 비단 가사도우미뿐 아니라 지역자원봉사연합회, 인근 묵동 교회, 중랑구청 등의 도움을 받고 있다.


주현 씨는 “밤에는 도움을 주는 분이 없는데, 이때 급한 일이 생기면 옆집 아줌마를 부르면 금세 달려와 도와주세요. 이런 가슴 따뜻한 분들이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이 공간을 통해서 새삼 좋은 분들을 이웃사촌으로 만나게 돼서 더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듯, 이들의 수다는 끊일 줄 몰랐다. 하루 중 즐거웠던 이야기, 연예인, 남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비롯, 앞으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눈다. 나이가 비슷한 또래라 서로 공감하는 고민들이 유난히 많다. 그래서 인지 이들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 보였다.


“가끔 싸울 때도 있지만, 그냥 언니동생으로 살아요. 가족처럼 서로 의지하면서요.”


코골이가 심하다는 주현 씨와 지은 씨.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발로도 그림을 제법 잘 그리는 은정 씨. 조용하고 사회복지사가 꿈이라는 소은 씨. 어느새 이들은 사소한 습관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한사랑자립홈 식구들의 바람은 한가지였다.


주현 씨는 “웃는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잘 웃지만, 더 많이 웃는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뿐 아니라 이곳을 들르는 사람들도 절로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는 곳이요. 장애인이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관심있게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한다.

가족의 참의미는 ‘관용’과 ‘사랑’


한지붕 아래 산다고 다 가족이 되는 걸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일상이라는 촘촘하게 엮인 그물에서 눈물, 콧물, 웃음, 걱정을 함께 나누며 한 가족을 이루며 사는 이들. 가족을 이루는데에는 단순한 진리가 숨어 있었다.

다름아닌 가족은 피가 아니라 관용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그룹홈이 전해주는 참가족의 의미였다.                   글/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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