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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없는 세상 상상할수 없어요"늘어가는 조손가정..실태 파악조차 안돼, 실질적인 정부지원대책 절실
배미용 기자 | 승인 2005.11.04 10:37

조손가정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지만, 그간 가정 내의 문제로 인식되어 아직까지도 뚜렷한 지원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중학교 2학년인 정아(가명)는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5년 전 불법비디오를 판매하다 걸린 후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고, 어머니는 정아를 낳자마자 집을 나가버렸다. 올해 82세인 정아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50만원으로 정아와 고등학생 2학년인 정아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한 달에 25만원 하는 7평 남짓한 월셋집에서 지내는 이들.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빠듯해 늘 돈 때문에 한아름 걱정을 안고 살고 있다.

뚜렷한 복지대책 없어 기본적 생활 누리지 못해

현재 우리나라 1천 4백만 가구 가운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의 양육을 책임지는 조손가정은 3만 가구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부분 차상위계층이 많아 아이들은 남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영양상태도 고르지 못하는 등 기본적인 생활조차 누리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보건복지부 아동정책과에 따르면 조손가정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라 더 문제다. 조손가정이 생기는 이유는 과거만 해도 가정불화 등이 주원인이었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떠맡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하지만 그간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동정의 대상일 뿐 제도적 배려의 대상으로는 인식되지 않았다. 때문에 아직까지 이들을 위한 뚜렷한 복지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보호자가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참 자라는 나이에 정서적 교감이나 대화의 부족에서 오는 상대적 결핍증은 아이들 성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을 키우는 노인들의 경우 연로하기 때문에 갑작스런 사고로 더 이상 아이들을 양육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큰 아기가 3살 때였을 거야, 그 때 난 대구에 있었지. 얘들 애비가 한 손엔 큰 아기, 한 손에는 갓난아기를 안고 울면서 내려온 거야. 좀 맡아달라구. 내 새끼들인데 어쩌겠어.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와 같이 살았지.”

31살 때 남편을 여윈 정아 할머니는 홀로 삼남매를 키우느라 이것저것 안 해 본 것 없이 고생해왔는데 늘그막에 또 다시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나이가 더 들자 전처럼 할 수 있는 일도 줄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까지 얻었다.

“초등학교 가라고 정아 앞으로 입학통지서가 나오더라구. 이제 다 컸네, 싶은 마음에 긴장이 풀렸던가봐. 갑자기 쓰러졌는데 중풍이 온 거야.”

병이 들면서는 그나마 벌었던 돈도 못 벌게 되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났다. 정아의 큰아버지, 고모 역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정아네를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어떻게 사나 싶어 눈앞이 깜깜해졌는데 다행히 이들의 딱한 사정을 본 이웃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뒤에서 애들 우는 소리만 나도 혹시 내 애가 우는 건가 싶어 돌아보는 게 부모맘인데, 어찌 제 자식을 버리고 발길을 끊을 수 있는지, 원…”

정아 할머니는 손주를 두고 간 아들, 며느리를 원망하다가도 어버이날이 되면 직접 카네이션을 만들어 가슴에 달아주는 손주들이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자라준 것도 복이라고 여기며 산다.

“안타까운 심정 어찌 말로 다하리”

조손가정의 문제는 농촌으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몇해 전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할머니와 철없는 손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집으로’에서처럼 도시에서 살던 아이들이 가정 형편상 ‘당분간’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에서는 호기심 많은 도시 소년과 사랑 넘치는 외할머니 사이의 이야기를 향수에 젖게 비교적 낭만적으로 그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당분간’이라는 기간이 막연하기 때문이다.

특히, 농촌은 산업화 이후 도시와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그 격차가 심하게 벌어져 있기 때문에 도시보다 열악한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다. 주양육자인 조부모의 대부분이 70세 이상은 물론이고 무학이나 초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지고 있어 자녀교육이나 양육에 대한 기술이나 지식은 전통적인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교육방식은 아이들 성장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가정 밖의 외부환경도 아동들에게는 현대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 도시 아이들과 비교하면 교육 및 문화적인 격차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조손가정은 대부분 차상위 계층이 많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단 농촌의 문제만은 아니다. 특히 조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을 경우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조손가정의 아이들은 현실적으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조부모 밑에서 자라기 때문에 대부분 수급원자 가정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학비와 식비가 지원되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 수급 받는 돈도 가족 구성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40∼50만원 선이 대부분이다. 이 돈으로 월세를 내면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하다.

“실내화가 다 떨어졌다고 하나 사 달랬는데 돈이 없어서 못 사줬어. 그랬더니 벗고 다녔대, 의붓 할머니지 뭐.”
부천시 오정구에 사는 아영(가명, 9세)이 할머니(82세)는 자신을 아영이의 ‘의붓 할머니’라고까지 표현한다. 엄마 없는 아영이가 가엽기만 한데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니 해주는 것보다 못해주는 게 많아 늘 한이 되기 때문이다.

아영이 어머니는 아영이를 낳자마자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그 뒤로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다가 몇 년 전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워있다. 게다가 아영이가 4살 때는 아영이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아영이가 집 앞에서 놀고 있는 걸 확인하고 잠깐 집에 들어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를 따라 가더니 1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저거 잃고 나도 앓아 누웠지. 신문에 광고 내고 이리저리 수소문도 해봤지만 소용없었어. 그때 생각만 하면…, 제 정신이 아녔어. 1년 뒤 어느 시골에서 연락이 왔더라고. 다 죽어가는 꼬마애가 있는데 신문에 낸 아기 같으니까 와서 확인해 보라고. 그때 병원에 누워있었는데 링겔 바늘을 빼고 3층에서 공중전화가 있는 1층까지 헐레벌떡 뛰어내려갔던 게 생각 나. 가 봤더니 시커멓고 삐쩍 마른 애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워가지고 있더라고. 가슴이 얼마나 아팠던지….”

그때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아영이 할머니. 그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뒤로 아영이는 시력도 안 좋아지고 피부 상태도 안 좋아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아영이 할머니의 걱정은 따로 있다.
“92년에 눈길에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졌었어. 그 뒤로 돈이 없어서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지. 지금도 몸이 이렇게 안 좋아. 잘 때도 온몸이 쑤셔서 이리뒤척 저리뒤척거리는데 아영이는 그것도 모르고 자꾸 내 품만 파고들어. 언제 죽을지도 몰라 저거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져.”

잘 때도 할머니 옆에 꼭 붙어서 자는 아영이의 소원은 이사가는 것이다.
“너무 어두워서 낮에도 불을 켜야 하니까 전기세가 많이 나가요. 화장실도 너무 멀고요. 할머니께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잘못했을 때 파리채말고 다른 걸로 안 아프게 살살 때려달라는 것이에요.”
다른 여느 아이들처럼 천진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살지 못하는 것에 슬퍼하기보다 명절 때 다른 아이들은 시골로 할머니 보러 가야하는데 자신은 항상 할머니를 볼 수 있다면서 되려 할머니를 위로할 줄도 안다. 영양상태가 고르지 못해 계란후라이 만큼은 매일 해주려고 노력하는 아영이의 할머니는 점점 자라는 아영이를 키우기가 버겁다.
“살아있는 동안에야 누구보다 잘 키우겠지만 나 죽고 우리 아영이를 잘 키워 줄 사람이 나타날런지….”

세대간의 격차, 경제적, 학력의 빈곤 대물림

이처럼 보호자의 연령에서 오는 문제점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교육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가족학회 회장인 한양대 안병철 교수는 “부모가 키울 형편이 안 될 경우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현실적으로 부모의 빈 자리를 조부모가 100% 채워주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부천오정구노인종합복지관의 홍선화 사회복지사는 “조손가정의 경우 보통 60∼70살까지 나이차이가 벌어지기 때문에 할머니와 손자간의 세대차이를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세대간의 격차를 줄여줄 수 있는 중간단계의 역할이 필요한데 손주는 손주대로 할머니와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고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손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해 답답해한다고.

게다가 아이들은 대부분 할머니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을 쌓는 경우가 많아 소위 말해 ‘삐뚤어져’ 나갈 수도 있다는 것.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들에게 환경적인 요소는 무척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모델링이 없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여기에 조부모의 ‘내 강아지가 딱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오냐오냐’식 교육도 왜곡된 양육법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노인분야이든 아동분야이든 조손가정에도 복지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들 대부분은 사회에서 취약계층에 해당하지만 아직까지는 정책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재연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이가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소년소녀 가장, 결손가정, 결식아동에게 집중된 사회적 관심을 조손 가정에게도 기울여야 한다”며 “한편으로는 경제적 사정으로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부모들을 무조건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김혜선 박사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손자녀 양육가정을 대리 양육가정으로 지정하고 적절한 아동양육비용 지급 등 체계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손가정을 위한 자조집단 프로그램 형성 및 활성화, 손자녀 양육 여성노인에 맞는 부모교육 프로그램 개발, 여성자원활동자나 가정봉사원을 활용하여 조손가정의 일상생활 보조, 공부방 활성화를 통하여 손자녀들의 교육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할 것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각 복지관에서는 조손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추세다. 부천시오정구노인종합복지관은 올해 4월부터 ‘꿈나무 지킴이’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자원봉사자가 직접 조손가정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대화상대가 되어주고 부족한 공부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아이와 동성의 자원봉사자가 방문하는데 아이들에게 ‘언니’, ‘형’이 되어 대화도 나누고 즐거운 오락시간도 갖는다.

사진은 양천노인종합복지관의 우리두리나눔방 프로그램중.

양천노인종합복지관은 ‘우리두리나눔방’이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한 달에 두 번 조손가정 노인과 함께 부모역할훈련 등을 진행하는데 생계를 위한 노동, 양육 및 가사부담을 갖는 조부모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욕구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건강체크는 물론이고, 원예치료, 집단상담, 방문 학습지도 등이 마련되어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부모가 아이 양육을 포기할 경우, 조부모, 친척 등이 대신 맡아 키우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에 보육원이나 보호시설로 가던 아이들이 가정적 분위기에서 자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조손가정 지원대책 절실, 정부차원 관심 필요

학교에서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평등해야할 권리가 있다고 배운 아이들이 살면서 교과서에 실리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배신감은 오죽할까. 아직까지는 가정 내의 문제로만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해 온 조손가정. 어린나이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불만도 꾹 참아내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타깝기만 하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고, 어렸을 때의 환경이 자라는 데 무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이 아름다운 시간들로만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 주위의 보다 많은 관심과 정부차원의 확실한 대책이 절실한  때이다.                       글·사진/배미용 기자

배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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