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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도둑질이 농사뿐인데..."넘치는 재고 줄어드는 소비량 쌀값 폭락 부추겨...추곡수매제 폐지 첫해 애타는 농심(農心)
표수진 기자 | 승인 2005.12.01 10:49

 

지난 10월 12일 서울에서 1시간 남짓 걸리는 경기도 김포시 걸포동. 황금빛 물결로 출렁거리는 들판에 여기저기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한때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던 이곳은 개발 바람이 불어 닥치며 겨우 몇몇 집만 논농사의 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 마을 원주민 이원우(70)씨는 남아있는 농민 중 한 명이다. 수확을 앞둔 그는 흥은커녕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간다고 토로했다. 알알이 들어찬 곡식을 눈앞에 두고서도 수확하는 손은 그리 달갑지 않다. 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았다는 이씨. 8천 평이나 되는 대농사를 짓는 그이지만, 올 한해 헛일을 했다며 푸념했다.

“쌀 수매도 끊긴 마당에 어디다 팔어”

“이 근방이 전부 논이었어. 근데 봐. 큼지막한 돌덩이로 땅 메우고 건물 지어놨잖아. 세놓으면 그게 더 낫거든. 누가 이걸 하나. 쌀값도 제대로 못 받는 걸. 나도 먹고사는 거 아니면 안 했으면 좋겠고만.”
도로변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빌딩과 가건물을 가리키며 이씨가 말했다. 농사를 지어 먹고살면 당장 굶어 죽지는 않지만, 소득이 없다는 말이다. 거기에 쌀값마저 떨어지고 있어 그는 “농사지을 맛이 없다”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올해부터 정부가 미리 정한 가격으로 쌀을 사주던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공공비축제’가 시작됐다. 우려했던 대로 쌀 가격은 이미 전년대비 20여%나 떨어졌다. 그러니 농민들은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 마을에 사는 김모 씨는 “수매제를 할 적엔 17만원에 거래됐는데 지금 아키바레(추청벼)가 15만5천원에 거래되고 있어요. 가격은 자꾸 떨어지고, 거기에 물량이 넘쳐나고 있어 받아주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마땅히 팔 곳이나 있나…”라며 탄식했다.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정부미 방출량을 줄이고, 공공비축 매입물량을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 쌀 작황이 좋은데다 소비량이 줄어 재고량이 넘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미곡종합처리장의 배정된 수매물량이 감소했고 벼 매입가격이 낮춰져 전년보다 농가의 사정이 더욱 악화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득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

김씨는 “이미 수확한 벼는 아는 사람을 통해 야금야금 팔고 있는데, 여차하면 다 묵힐 판이에요. 앞으로가 더 큰 문제죠. 수확을 해도 누구한테 파냐고요. 빚 얻어 농기계니 뭐니 다 사다 놨는데, 하나 갚지도 못할 판국인데…”라고 말했다.

UR 이후 10년, 해를 거듭할수록 농민의 인심은 피멍으로 얼룩지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 40년간 농사를 지어 온 유재철(52)씨. 그는 자신을 ‘도시 빈민’이라 칭했다. 1만 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벌이는 법정 근로자 최저소득에도 못 미칠 것이라 게 그 이유다.

“쌀값을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반 물가는 맞춰야 살 것 아니겠어. 차라리 아파트 경비해서 한 달에 1백만원 받는 게 낫지, 뼈 빠지게 농사지어봤자 1년에 2천만원 버는데 3분의 1은 투자비로 들어가고, 뭐 먹고사느냔 말이지.”

논농사만으로 안 되겠다 싶은 그는 몇 해 전부터 시설작물에 손을 댔다. 600평의 땅에 비닐하우스 석동을 지어 열무를 키운 것. 그러나 그마저도 가격이 폭락해 수익은커녕 빚만 늘었다.

“600평에서 열무 2천관을 했는데, 아는 사람한테 전부 1만 2천원에 넘겨버렸어. 한 관에 300원씩 하던 것도 폭삭 가격이 내리더라고. 애들 과외 한번 못 시키고 빚만 늘어가는 거지.”
유씨처럼 논농사로 재미를 보지 못하는 농민들은 저마다 돈이 될 만한 작물을 찾아 옮겨다니지만, 항상 제자리걸음보다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쌀 수매도 끊기고, 돈 될 만한 일을 해야 하는데…. 농사로는 힘들어. 얼마나 속상했으면 아예 갓 돋아나는 작물을 로타리로 쳐서 없애버릴까. 차라리 내가 7·80 먹은 노인이라면 이까짓 것 안 한다고 하지. 배운 도둑질이 농사뿐인데 어딜 가겠어?”

1만 평의 농지에서 유씨가 올 한해 수확한 양은 이른 벼와 늦벼를 합쳐 300가마 정도. 그 중 3분의 1 이상이 마땅한 판로가 없는 실정이다. 정부와 농협 수매물량이 정해진 데다 생산량 상당수 이상을 농가 자체에서 소화시켜야 한다.

“친인척들 다 동원해도 20가마밖에 못 팔았다고. 나머지 80가마는 고스란히 우리 집 창고에 있게 돼. 그나마 여긴 수도권이라 낫지. 지방은 더 큰일이라는 데 뭘….”

쌀값  폭락, 볏 가마 쌓기에 나선 농민들

가을걷이가 한창인 경기도 김포시 걸포동 들녘. 알알이 들어찬 곡식을 수확하는 농민들의 손은 그리 달갑지만 않다.
지난 9월 23일 농림부가 제시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올해 8월 정부와 민간 공매업체가 보유한 쌀 재고량은 711만섬(정부 611만섬, 공매업체 100만섬)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32만섬보다 65%가 늘었다.

이런데다 농림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지난해 180만섬이던 공매량을 39만섬으로 줄이고 농협이 재고량을 갑절쯤 늘렸다. 당연히 소비는 없고, 물량은 넘쳐 쌀값 하락폭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셈이다.
유씨는 “민간에서 하는 미곡처리장은 쌀값이 떨어지면 안 산다고. 결국 농협이 사줄 수밖에 없는데, 재고가 자꾸 쌓이는 거지. 중국산 쌀도 물밀듯 들어오니 쌀값은 계속 떨어져. 이제 우리 농민들만 죽어라 해”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앞으로 3년 동안 고정직불금 및 변동직불금제를 통해 농민들의 피해를 보전해 주기로 했다. 고정직불금이란 WTO 허용보존 조건에 맞도록 타작물을 재배 및 휴경할 경우 1㏊당 평균 60만원을 연말에 지급하는 방식이고, 변동직불금은 수확기 산지 평균 쌀값을 반영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즉, 쌀값이 5% 떨어질 경우 80㎏ 한 가마 목표가격 17만원의 98.2%까지 보장하고, 고정직불금도 1㏊당 60만원에서 70만원으로 올린다. 하지만 애당초 쌀값이 5~6% 정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제도라, 별도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공공비축제가 시작된 첫해. 농민은 갈수록 떨어지는 쌀값에 불안한 마음뿐이다.
 이를 보다 못한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의 양정제도를 규탄하며 볏 가마 쌓기 투쟁에 나섰다. 6개 농민단체로 짜여진 광주 전남 농민연대 소속 50여 명은 지난 10월 6일 전남도청 앞에서 쌀 투쟁 선포식을 열고 ‘생산비를 보장하는 추곡수매제 부활과 공공비축 산물벼 매입중단’ 등을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 강원, 충청 등지의 농민들도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적절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공공비축제 매입을 거부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일 태세다.
채 수확도 이뤄지기 전부터 쌀값이 폭락하고 있고, 3년간 한정된 목표가격의 연장이 불가피 하기 때문이다.

농민 이원우 씨는 “이렇게 되면 타격이 크다고. 뭔가 적절한 대책이 없으면 누가 농사를 짓겠어. 당장이야 창고에 쌀이 가득하다지만, 먼 미래를 내다봐야지. 농사짓는 사람 하나 안 남으면 누가 쌀을 만들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농가에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산지의 쌀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오더라도 정부가 보존직접지불금 제도를 통해 지원하기 때문에 실제 농민 소득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일축했다.

컬라 빛 황금 들판, 실상은 흑백 그 자체

정부가 앞으로 3년 동안 고정직불금 및 변동직불금제도를 통해 농민들의 피해를 보전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별도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황금 들녘에서 수확이 한창인 유재철 씨는 “풍성한 황금 들판은 컬러 빛이지만 실상은 흑백 그 자체야. 이제 우리 농민들은 전망 부재에 빠졌다고. 말로만 ‘농촌 살리기’를 외치지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지. 다들 보여주기 위한 행정에 빠져서…”라고 말했다.
오늘도 농민들의 탄식과 절규는 끊이질 않는다. 수확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곳간에 쌓일 곡식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친인척들 동원하는 것도 한두 해지. 기계며 뭐며, 빚까지 얻어가며 투자는 잔뜩 해놨는데 어쩌겠어. 버릴 수도 없고…. 앞으로 20년은 이 짓을 더해야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
지난여름 비 오듯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 알알이 맺히지 못한 채 쭉정이처럼 껍질만 남아서 일까. ‘와르르’ 콤바인에서 햇벼를 쏟아내는 소리가 왠지 구슬프기까지 하다. 검게 그을린 유씨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만 맴 돌뿐이다.
글/표수진 사진/최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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