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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나눠주기' 아닌 정당한 '권리찾기'장애.비장애 구분짓는 사회인식이 문제... 차이 인정하고 존중해야
김혜경 기자 | 승인 2006.02.06 15:12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큰 목소리’는 무시 못할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대로 당사자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기에 그만큼 더 줄기차게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요즘 장애인들의 행보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동권, 교육권, 행복추구권 등 현재 장애인 권리 찾기 움직임의 핵심 쟁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부르짖어온 한결같은 이들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시대, 장애인이 선 자리가 궁금해진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사는 사람들

정연숙(38·가명)씨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9)을 재활원에 데려가기 위해 매일아침 택시를 타야만 한다. 외진 곳에 위치한 재활원이라 택시 잡기도 만만치 않지만 정씨에겐 정작 잡고 나서가 더 문제다. 택시 기사 중 열에 셋은 장애를 가진 아들의 탑승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첫손님인데 부정 타게 생겼다고 노골적으로 불쾌해 하는 기사들이 아직도 비일비재해요. 가는 내내 욕지거리일 게 뻔한 혼잣말을 들으랍시고 해대는 사람도 많고요. 오죽하면 개인택시인지 일반택시인지 그것부터 확인하고서 택시를 잡겠어요.”

재활원은 도로에서도 제법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정씨는 아들을 안고 10분 거리를 걸어 올라갈 때가 많다. 아이가 불편한 몸인 걸 뻔히 알면서도 기사들이 재활원 앞까지 태워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0cc급 승용차를 모는 송정명(46·하지마비)씨는 “장애인들 보면 죄다 좋은 차 굴리고 다니는데 살기 어렵기는 뭐가 어렵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정부의 세금혜택을 받기 위해선 2000cc급 중형차량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데도, “좋은 차 끌고 다니니 정부 지원금 늘릴 필요가 뭐 있느냐”는 비장애인들의 무지를 접할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하지만 송씨는 그냥 참고 만다. 전에 한번 구구절절 설명하다가 “피 같은 남의 세금 받아쓰면서 뭐 그리 기고만장하냐”라는 소리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단 몰상식한 일부 비장애인들만 해당하는 경우일까. 장애아동을 키우는 이모(42)씨는 아니라고 말한다. 통합교육 이후 구립 어린이집을 찾아간 이씨는 원장으로부터 ‘아이가 걷지 못하니 못 받아주겠다’는 소리를 직접 들었다.

“협조하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 끝에 겨우 아이를 맡길 수 있었어요. 말이 좋아 협조지 아이와 함께 등하교하며 매 시간 옆에 붙어 수발해야 하는 건데도 우리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은 죄인 아닌 죄인처럼 감지덕지, 굽실거려가며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어요.”
이 같은 경우는 드문 일도 아니다. 인지 능력이 있는 3급 장애 아동만 받겠다는 둥 장애아동은 3명까지만 받겠다는 둥 일명 ‘입맛 따라 골라 받는’ 시설이 부지기수라고. 정부 지원금이 나온다는 이유로 공짜로 얹혀 배우는 취급까지 받으니 아이를 맡기고도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함석홍 상담지도팀장은 “아무리 정부가 통합교육을 강조해도 시행초기의 교육현장에선 능동적인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어요”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지침은 떨어졌지만 아직 현장에서의 의식까지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에요. 통합교육 이후 자율적으로 연수에 참여하는 교사도 많지만 노골적으로 장애아동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는 교사도 많거든요. 실제 들어오는 상담건수를 보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특수교사와 일반교사와의 갈등도 많아요.”

‘너희’와 ‘우리’의 차이

이에 대해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김성수 과장은 “장애인을 특별한 부류인 것처럼 치부하며 자신들과 구분하는 비장애인들의 편견이 사회분위기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장애인 복지 정책이 삶 속에서 융합되기 힘든 것은 우리 사회가 의식적으로 장애와 비장애를 분리하기 때문이에요. 요즘처럼 장애인 관련 정책들이 한꺼번에 진행되면서 비장애인들이 이를 장애인에 대한 ‘특별대우’ 쯤으로 인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교육권이나 이동권 등 삶과 직결되는 문제들과 부딪히며 시민들이 느끼는 피해의식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이 ‘너희’와 ‘우리’로 구분 짓는 차별의식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비장애인들이 오늘날 장애인들의 운동을 ‘권리찾기’가 아닌 자신들의 ‘권리 나눠주기’정도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깨어있는 21세기의 문화인이라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의식은 우리 삶 곳곳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성수 과장은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용어사용을 보면 쉬이 알 수 있다고 전한다.

“장애인들을 표현할 때 우리들은 소위 ‘이들’이 아닌 ‘그들’이라고 표현해요. ‘비록’, ‘~할지라도’ 등의 한정적인 표현을 봐도 알 수 있고요. 특정 계층이 아닌데도 ‘무리에서 비껴난 사람들’이니 ‘그늘진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예사로 사용하는 것 역시 장애인은 무조건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일반의 편견에서 우러나온 것이에요.”

이렇듯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호칭이나 표현에는 장애인에 대한 관점이 들어있다. 그만큼 호칭은 부르는 이의 행동과 사고에 의한 판단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배융호 실장은 ‘장애인 용어-어떻게 부를 것인가’라는 글에서 “그러한 용어들을 사용하는 사이, 사회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애’에만 초점을 두게 된다. 결국 이러한 용어들은 우리 사회가 인간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장애에만 관심을 두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또 “사물의 이름은 이름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장애인을 어떻게 일컫는가는 곧 그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관련 용어는 어감상의 불쾌감 때문이 아니라 인권과 생존권의 문제로봐야 한다.
김성수 과장은 “우리가 굳이 장애인이 ‘되었다’가 아닌 장애를 ‘갖게 되었다’, 장애를 ‘앓는다’가 아닌 ‘갖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기 위함이에요. 그런데 우리사회는 아직도 장애를 전생의 업이니 팔자, 집안 내력 등의 개인사로 치부해 버리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이 사회에서 어렵게 사는 것을 사회 구조의 모순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만 의식하게 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비단 이뿐일까. 이런 인식에는 언론 역시 일조하는 바가 크다. 드라마는 물론 신문이나 뉴스에서도 우리는 ‘절름발이 행정’, ‘반신불수 경제’ 등의 표현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방송에서 다뤄지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보면 대부분 ‘무능력’하거나 ‘불쌍한 사람’으로 비쳐지고, 그렇지 않으면 ‘긍정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 등에 그쳐 온정주의적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식변화 없는 ‘밀어넣기식’ 사회통합

김 과장은 “사회통합의 전제 조건이 인식변화임에도 불구, 그것이 선행되지 못한 상태에서 장애인을 억지로 사회에 밀어 넣고 있다”며 ‘덤핑식’ 사회통합방식을 지적한다. 또한 건축이나 편의시설, 주차장법 등 장애인 생활과 민감한 관련 정책들이 비장애인 위주로 계획되고 제정되는 과정에서 오는 제자리걸음식 행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정치, 제도에 처음부터 장애인에 대한 개념이 심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지켜질 리가 없고, 지켜지질 않으니 특별법이나 전문법도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편견들은 오해를 넘어 사회의 몰이해를 낳기도 한다.
정신지체 아이를 둔 이영미(36)씨는 얼마 전 아이와 함께 복지관 레포츠센터를 찾았다. 이씨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아이가 웬일로 비장애인의 알록달록한 소지품에 손을 뻗었다. 여느 부모 같으면 먼저 주의를 시킬 일이지만 평소 반응이 적은 아이의 행동이 못내 기쁜 나머지 이씨는 “좋아?”하고 기뻐 물었다. 상대방의 이해를 짐작하고 한 행동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자랄수록 더 제대로 가르칠 일이지 애들 교육 그렇게 시켜 되겠느냐”는 씁쓸한 충고였다. 대수롭지 않은 반응 하나에도 실낱 같은 희망을 품는 장애아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까닭이다.

이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구분은 명확히 하면서 정작 장애의 차이는 제대로 인식 못하거나 존중해주지 않는 사회의 몰이해가 안타까워요”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함석홍 팀장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거리를 점진적으로 좁혀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장애인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아동은 외부로 나가서도 통제를 받을 때가 많아요. 그럴수록 자연스럽게 비장애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는 줄어들게 되지요. 스위스 등 선진 복지국가들을 보면 놀이터나 공원 어디에서든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건 그것이 그 사회 공통의 의식수준이기 때문이겠죠.”

 

  이를 위해 복지관에서는 지역학교를 찾아가 아동과 청소년을 상대로 통합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편견이 자리 잡지 않은 유아와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식개선 활동이 실효를 거두고 있어 이들 중심의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자회, 먹거리장터, 공연 등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화합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해마다 방문객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복지관 차원에서 그 이상 외부로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지역 중심으로 인식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조금씩 결실을 맺는지 함 팀장은 요즘 장애인에게 자원봉사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문의전화가 자주 온다고 한다.
“마음이 있어도 선뜻 다가서기가 어려운 게 아직은 사회 일반의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봉사하는 법이라는 게 따로 있나요, 가까운 이웃부터 한발 다가가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지요. 그 거리감을 좁히는 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요.”

해마다 늘어나는 장애인구 수

장애인구수 증가 추이가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 누구에게나 장애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언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위험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장애 비장애를 차별 짓는 편견은 발전적인 사회 모색을 위한 아무런 방법도 제시할 수 없다. 장애를 가진 것이 결코 흠이 되지 않고 불편하지 않을 수 있으려면 결국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정신적·신체적 손실을 입은 후에야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그대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 그것이 가능할 때 장애를 가진 자도 그렇지 않은 자도 가진 권리를 당당히 누릴 수 있는 통합사회는 완성될 것이다.  

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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