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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에서 악몽으로, 그리고 희망으로천벌처럼 느껴졌던 내 아이... "이젠 압니다, 하늘이 내려준 천사라는 걸"
김혜경 기자 | 승인 2006.03.14 21:20

“인사해야지, 어서?”
현관에 들어서자 빨간 원피스를 입은 갈래머리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의 재촉에 뚫어질 듯 바라보던 호기심 어린 눈이 귀엽게 휘어지더니 넙죽 허리를 굽힌다. 이내 해맑은 웃음이 가득 들어찬 조막만한 얼굴이 고개를 든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콧망울이 몽툭한, 전형적인 다운증후군의 특징이 천진하게 드러나는 얼굴. 있는 그대로가 너무도 사랑스러운 지영이(37개월)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 하늘이시여…

“이제 그만~. 안돼, 너무 많이 먹었잖아~”
지영이가 다과상에 놓인 음식을 연달아 집어들자 서경주(39) 씨는 말리기 바쁘다. 엄마가 그러든 말든 지영이는 양손에 쥔 한과와 과일을 아삭아삭 번갈아 맛있게도 배어 문다. 작은 체구답지 않게 먹성이 좋다. 체중 조절에 민감한 장애를 타고났지만, 잘 먹어준 덕에 건강이 눈이 띄게 좋아졌다며 엄마는 아이의 포식을 잠깐 눈감아 주었다.
“다운증후군은 50%가 합병증을 달고 태어나요. 항문이나 식도, 콩팥 등 장기 일부가 손상된 상태로 태어나는 아이가 많은데, 지영이는 심장에 구멍이 두개나 뚫려있었어요. 검사를 다섯 차례나 받았는데 다행히 큰 수술 한번 없이 호전되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심장 판막에 뚫린 구멍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전하는 경주 씨의 얼굴이 짐짓 밝았다. 하지만 충격이었던 일들을 덤덤히 대뇌일 수 있는 것도 다 시간의 힘이라며 그는 쉽지 않았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지영이는 2003년 1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때까지 장애라는 건 건너건너 남의 집에나 있는 일이라 여겨온 경주 씨 가정에, 감당할 수 없을만한 무게로 다가온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임신 5개월 때 트리플검사를 했을 때만해도, 병원에서는 특이사항이 없다고 했어요. 혹여 유산할까 쉬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낳고 나서야 내 아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받아 안은 아이의 얼굴에 뚜렷이 나타나는 다운증후군의 특징을 보면서도 가족들은 ‘설마’하는 심정으로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2주후, 의사로부터 아이가 심장이상을 타고난 다운증후군장애라는 말을 들었을 때, 경주 씨는 아이와 함께 끝도 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것만 같았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꼬박 6개월의 시간이 걸렸어요. 어떻게 먹고 자고 숨을 쉬었는지 모를 정도로 제 자신을 포기한 시간이었어요. 일절 바깥외출도 하지 않고, 오로지 불 꺼진 방에 앉아 울고 또 울고…. 그땐 아이 얼굴만 봐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 전화선까지 뽑아놓고 산 시간이 그나마 6개월로 끝날 수 있었던 건  경주 씨가 죽은 듯 보낸 그 시간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남편 안씨 때문이었다. 직장에서 돌아와 매일같이 흐느끼는 아내를 보아야만 하는 남편의 마음도 똑같은 고통이었다는 걸  그제야 헤아릴 수 있었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큰딸 지선이(7)와 한껏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던 지영이까지… 그렇게 돌보지 못한 가정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밀려오는 자괴감에서 헤어나기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자신이 왜 장애아를 낳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 열 달 간의 일기장과 가계부를 몽땅 뒤졌던 그다. 혹여 무얼 잘못 먹었나, 어떤 일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진 않았나, 지난 과거 하나하나가 끝없는 의심과 자책이 되어 서씨를 괴롭혔다. 그런다고 염색체 돌연변이로만 알려진 다운증후군의 원인을 이제 와 찾아낼 수는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아이가 나를 강하게 만들죠”

그러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한 모임을 알게 되고부터 경주 씨는 비로소 컴컴한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서 탈출구를 찾아내리라는 심정으로 찾은 그 곳에서 그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저보다 더 힘들어하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읽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거예요.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집안의 반대가 심해 마음 고생하는 사람에서부터, 도저히 키우기 힘들어 시설에 맡겨야겠다는 사람, 심지어 살고 싶지 않다며 자살사이트를 공유하는 어머니들까지…. 아마 그 어머니들을 통해 제 나약한 모습을 보았던 거 같아요. 갑자기 가슴 속에서 뭔가가 불끈하는데, 이거 안 되겠다 싶더라구요. 이 사람들과 함께 일어서야겠다는 결심이 생긴 건 그때였어요.”
그 후 회원 몇몇을 집으로 초대해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달에 한번씩 2년을 이어온 모임은 회를 거듭하면서 공유를 넘어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고, 처음 12명이던 회원도 점차 불어 80명으로 늘어났다. 작년부턴 다운복지관의 도움을 받아 장소를 제공받으며 전문강사도 초빙해 부족한 지식도 넓혀가고 있다. 그렇게 아이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면서  양육에 대한 불안감도 조금씩 털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삶 속에서 느끼는 장벽은 여전히 높고 가파르다.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의 시선은 손 놓은지 오래. 비장애인들의 무지도 그를 힘들게 하지만 그건 같은 장애아를 둔 부모의 이기주의를 접할 때 느끼는 장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를 통해 사회의 장애인문제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우리 장애 아이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려면 서로 단결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장애아부모 중에는 자기 아이에 국한된 의식수준을 갖은 이들이 많아요. 우리 아이는 장애가 경미하니까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거나, 일단 내 아이만 잘 되면 된다는 식의 부모들을 접하면 저도 모르게 맥이 풀려버려요.”
지역과 사회가 함께 풀어나가도 힘든 현실에, 자기 아이에만 국한된 열정은 정작 아이의 미래를 확실히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그는 이제 적극적으로 치료해주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다. 조기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한데도 좀더 일찍 체계적인 치료와 교육을 해주지 못한 게 무엇보다 미안하다.
그나마 치료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을 땐 다시 한번 높은 현실장벽에 맞닥뜨려야 했던 서씨.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특수학교는 그야말로 경쟁률이 고시수준인데다가 웬만한 구립 시설은 대기기간만 2년이 넘어 넋 놓고 있다가는 교육시기만 놓칠 게 뻔했다. 지난해 어렵게 일반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학습에서 방치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천근처럼 꺼져갔던 경주 씨였다. 다행히 올해부터 통합교육이 자리 잡은 구립어린이집에 자리가 나 한숨 돌리게 됐단다. 서씨는 아이가 크면 일반초등하교의 특수학급에 보낼 계획이라며 그 때쯤이면 특수학급 운영수준이 현저히 좋아지리라는 청사진을 풀어 놓았다.
“걱정이야 왜 안 되겠어요. 순탄히 좋은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그 속에서 아이가 부대낄 모습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아픈걸요. 그뿐인가요, 아이가 커서 맞닥뜨릴 세상, 혹여 그 세상에 두 부모가 모두 없으면 어쩌나 늘 걱정이죠. 하지만 지금은 현재에서 조금 앞선 미래까지만 생각할래요. 부모로써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일단은 그 속에서 만족하고 행복해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엄마의 그 마음이 통한 걸까. 색도장을 찍고 노느라 정신없던 지영이가 난데없이 “아오!”하고 탄성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아오’는 지영이가 기분 좋을 때마다 외치는 감탄사다. 언어와 인지능력이 18개월 수준인 아이가 제 기분을 표현해내는 자기만의 언어인 셈이다. 아직 1음절 단어밖에 발음하지 못하지만, 6,7세가 되면 갑자기 말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며 경주 씨는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의 발달 속도에 전전긍긍하던 3년 전에 비해 참 많이 달라진 모습이리라. 강한 엄마를 만난 지영이는 참 행복한 아이라는 말을 전하자, 그는 “지영이를 키우며 많이 강해질 수 있었다”고 돌려 말했다.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긍정형으로 바꿔 말한 것이 그답다.

더불어 함께  살라는 신의 섭리

"가만히 들여다 보세요, 참 귀여운 얼굴 아닌가요?" 경주 씨에게 지영이는 하늘에서 파견된 작은 천사이다
 “주위 사람들이 자주 물어요. 아이 키우느라 힘들지 않느냐고. 하지만 정작 아이로 인해 힘들 때는 별로 없어요. 오히려 지치고 힘들 때 아이 얼굴을 보면 마음이 잦아드는 평온을 느끼지요. 순수한 아이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가끔 지영이가 하늘에서 파견된 천사는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장애아를 둔 부모의 마음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경주 씨의 말처럼 우리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통해 신의 숨은 뜻 한 가지는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라는 신의 그 깊은 뜻 말이다.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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