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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급, 그 팍팍한 계단로웨증후군 혁찬이의 학교 입성기
"학년 바뀔 때마다 부대끼는 모습 안쓰러워요"
김혜경 기자 | 승인 2006.04.17 14:47

혁찬이(11)가 걷는다. 116센티미터의 작은 체구로 걸음마다 힘을 싣고 열심히 걷는다. 아이가 걸을 때마다 작은 몸이 좌우로 조금씩 기우는 모습이 위태롭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엄마는 아이의 걸음걸음을 눈으로 쫓고 있다. 걷는 것이 혁찬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기에 두 모자는 하루에 한번씩 늘 이렇게 저녁 운동을 다닌다. 10분에서 15분 사이를 넘지 않는 짧은 운동이지만 그 이상은 혁찬이의 다리가 견딜 수 없다.
구루병으로 심하게 휘어진 두 다리를 수술한지 2년. 철심을 박고 간신히 편 두 다리는 지금도 계속 굽어가는 중이다. 그래도 두 다리만 걱정할 수 있다면 엄마는 소원이 없겠다. 아이가 가진 병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보지도 걷지도 못했던 아이

로웨 증후군을 앓고 있는 혁찬이. 시력이 0.1도 되지 않아 늘 TV에 바짝 얼굴을 들이민다
“혁찬아, 좀 더 떨어지라니까~ 엄마 말 안 들을래?”
미경(39)씨가 TV 앞에 바짝 다가 선 아이와 실랑이 중이다. 엄마의 잔소리에 한창 만화영화를 보던 아이는 겨우 몇 센티 떨어지는가 싶더니 금세 다시 모니터에 붙어버린다. 또다시 떨어지는 호통에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가도 이내 자석처럼 빨려 들어가는 게 TV를 본다기 보단 말 그대로 화면에 ‘코를 박고 있는’ 것 같다.
혁찬이는 10년 전 선천성 백내장을 지니고 태어났다. 앞이 안 보여 하루 종일 잠만 자는지도 모르고 부모는 아이가 그저 순하다고만 생각했다. 생후 5개월이 다 돼서야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급히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그 탓에 일찍부터 돋보기안경을 써야했지만 그래봤자 시력은 겨우 0.1도 되지 않는다. 심한 난시 때문에 TV도 책도 코가 닿을 정도로 바짝 붙여봐야 하고, 계단 하나 오르내리는 것도 무척 조심스럽다.
아이의 정확한 병명은 ‘로웨 증후군’. 유전자질환의 일종으로 자랄수록 하나 둘 병이 늘어나는 희귀난치병이다. 의사는 처음 듣는 이 생소한 병이 줄곧 아이를 따라다닐 거라 했다. 
“유아기에는 백내장과 녹내장, 구루병 증세가 드러나다가 청소년기에 이르면 영양실조와 심근경색 등의 합병증이 나타난대요.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 단계를 밟아나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겁이 나요.”
마음이 착잡했는지 미경 씨 눈가에 살며시 눈물이 맺힌다. 그러나 미경 씨의 슬픔은 오래 가지 않는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혁찬이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울먹거렸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화장실 문이 손가락을 물었단다. 그 재치 있는 표현에 엄마는 금세 웃음을 짓고 만다.
“얘가 이렇게 울 틈을 안 줘요. 제가 속상해 안방에서 울고 있으면요, 옆에 쪼로로 따라 앉아선 우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막 놀려요. 다 큰 어른이 운다고. 연기력도 좋아서 얼마나 우는 흉내를 잘 내는데요. 제가 얘 때문에 웃고 얘 때문에 운다니까요.”
그러나 아이의 발랄한 모습은 좀처럼 집 밖에서 발휘되지 않는다. 집에서는 곧잘 웃고 떠들어대지만 남 앞에선 좀체 나서는 법이 없단다. 온 몸의 뼈가 약해 6살에야 걷기 시작했지만 툭 하면 넘어지는 바람에 몸 여기저기 푸른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작은 키에 걸음이 성치 않은 혁찬이가 행여 아이들 등쌀에 떠밀려 다치기라도 할까봐, 부모는 일년간 초등학교 입학을 미뤄야만 했다. 그 사이 급속하게 다리가 휘어 한차례 큰 수술을 받은 혁찬이는, 뼈마디에 쇠심을 박고 허리까지 깁스를 한 채 유모차를 타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유모차 타고 입학한 학교생활

중증장애아동을 기피할까 내심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한 TV 방송을 통해 사연이 알려진 이후라 학교 선택과 입학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아이의 장애가 심한 편이라 특수학교에 보내라는 주위의 권유도 있었지만 미경 씨는 아이의 사회성을 고려해 특수학급이 자리 잡은 일반학교를 선택했다.
“마침 집 근처에 특수학급 운영이 좋다는 학교가 있었어요. 발달장애를 가진 이웃집 아이가 그 곳엘 다녔는데 무난히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용기를 냈지요. 무엇보다도 이 다음에 사회에 나가 비장애인들과 섞이게 될 텐데, 어려서부터 조금이라도 면역력을 길러주고 싶었고요.”
다행히 친자식처럼 아껴주는 담임선생님을 만나 1학년 때는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다. 일일이 다른 아이들에게 혁찬이의 장애를 이해시키며 조금 더뎌도 혁찬이가 함께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심히 챙겨주는 선생님 덕에 아이는 그늘 없이 학교생활을 해 나갔다.
“아마 그 선생님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통합교육을 받았던 걸 아시고는 손수 그곳에 연락을 해 아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셨을 정도로 열심이셨어요. 제가 데리러 가는 게 늦어지는 날이면 집까지 아이를 데려다 주곤 했어요.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혁찬이 어머님, 힘내세요’하고 격려해주셨는데….”
하지만 학년이 바뀌면서 아이의 학교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1학년일 때는 곧잘 따라갔던 아이가 학년이 바뀌면서 점점 힘에 부쳐 하더니 요즘엔 등교하기 싫다고 떼쓰는 날도 부쩍 많아졌다.
체육과 음악 외에는 모두 도움반(특수반) 수업을 받고 있지만, 정신지체2급의 혁찬이가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미경 씨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중이염까지 겹쳐 아마도 수업내용이 뭔지도 잘 몰랐을 거예요”라며 측은한 듯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작년에 학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수업시간에 옷에다 대변을 봤다는 거예요. 입학 전부터 이미 대소변은 가릴 줄 알았는데, 학년이 바뀌더니 전에 없이 실수를 하더라구요. 아이 스스로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가 봐요.”
장애아에 대한 지속적이고 통합화된 교육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아이를 혼란에 빠뜨린 격이었다.
미경 씨는 통합유치원을 다니며 애써 길러진 사회성이 초등학교를 들어가선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며 걱정했다. 원반에서건 도움반에서건 보조를 맞추기가 버거웠던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기가 죽고 어울림과 표현력도 퇴행하는 듯 했다.
3학년에 올라가며 한층 더 부대낄 생각을 하니 미경 씨는 또다시 걱정이 밀려온다.
그나마 3학년 때부터는 혁찬이만을 전담해주는 보조교사가 함께 해 한 시름 놓게 되었지만, 그만큼 아이의 장애가 심각하다는 의미로 다가와 마음이 무거워진다고도 했다.
이렇다보니 많은 수의 중증장애아동 부모들처럼, 혁찬이 부모 역시 안타까운 심정으로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고려했었다.
“한동안 특수학교에서 운영하는 치료교실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혁찬이 보다 장애가 심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아이들 수준에 맞춰 나름의 규율과 운영방식이 있고, 아이들도 그 속에서 조직력과 사회성을 키우는 걸 보고 혁찬이를 특수학교에 전학시킬까 했었죠.”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평소 뭐든지 따라하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장애 행동까지 모방하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기 때문이다.
대신 사회성을 길러주는 치료를 집중적으로 시키려 마음먹었다. 토요일마다 한 시간 씩,  일년 동안 꾸준히 받아온 연극치료는 아이의 발달장애에 적중한 치료가 됐다. 정서안정에도 좋은 영향을 줘, 타인 앞에서 말하길 주저하던 아이의 모습도 많이 사라졌다. 막혔던 표현력과 자신감도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혁찬이에게 무엇보다도 해 주고 싶은 건 음악치료다. 인지는 떨어져도 음악에는 지각이 월등히 발달해서, 아이는 한번 들은 노래를 그대로 따라 외우는 비상한 재주를 지녔다.
“음악에만은 집중력이 대단해서, 가요나 국악, 연주곡도 즐겨 들어요. 박자와 리듬감이 살아있어서 특히나 트로트는 기가 막히게 부른답니다.”
비싼 예술 치료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라 음악 테이프를 틀어 주는 게 고작이지만, 본디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던 아이의 끼를 되살려주고픈 엄마의 바람이 묻어났다.

조금씩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면…
혁찬이는 요즘도 석 달에 한번씩 구루병 치료약을 타러 병원을 찾는다. 안압을 낮추기 위해 안과를 찾는 일은 아마 평생 동안의 일과가 될 것이다. 이미 한 차례 겪어 낸 다리 수술도 뼈가 성장하는 동안은 두세 번 더 치러내야 할 고된 시련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미경 씨는 좌절을 이겨냈다.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직접 겪는 아이만 할까 싶어요. 아이도 이겨내는데, 제가 울고 있으면 안 되지요. 제 몸도 못 가누는 아이들도 많은 걸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우리 아이는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어요.”
엄마의 바람이 소박하다. 혁찬이가 자기 이름과 주소를 외우고, 간단한 셈을 해 준다면 지금 단계에선 더 이상 바랄 게 없단다. 엄마는 믿는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조금씩 조금씩만 더 성장해 준다면 보지 못했던 아이가 보고, 걷지 못했던 아이가 걸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작은 기적들이 생겨날 거라고 말이다.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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