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관객과 소통하는 예술, 마임(mime)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십대들이 있다.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당당히 몸짓으로 표현하는 인천성동학교(청각장애 특수학교) 동그라미 마임팀이 바로 그 주인공들. 이름처럼 둥글게 큰 꿈을 그리며 희망을 빚는 학생들을 만났다.

창설된 지 올해로 12주년을 맞은 동그라미는 개교 40주년 행사에서 탄생했다. 당시 행사에 춘천마임축제 유진규 총예술감독의 기념공연이 있은 뒤 몇몇 학생들과 교사들은 마임의 매력에 빠졌다. 이어 청각장애를 안고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로 마임을 주목했다. 곧 학교 측은 학생들을 모아 팀을 만들었고 마임전문배우가 지도교사로 나서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마임, 마음을 비추다
지난 17일 인천 성동학교(청각장애 특수학교) 3층 학생들과 교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다가오는 금요일에 있을 유치부 공개보고회 때 발표할 공연 준비가 한창이기 때문. 학교는 매주 화요일 2시간동안 진행되는 방과 후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취미나 적성개발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교내 방과 후 활동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팀이 있으니, 바로 오늘의 주인공 ‘동그라미 마임팀’이다. 팀은 모두 6명으로 3학년 노상훈, 오은파, 이강복과 2학년 최수지, 김형철 그리고 1학년 박승열이 바로 그들이다. 현재는 취업으로 교내활동이 어려운 이강복 군을 제외한 총 5명이 남아 동그라미를 이끌고 있다. 

청각장애학생과 수화로 대화하는 김영미 교사

“사람들의 반응, 흥분될 만큼 행복해요”
평소 씩씩하고 밝은 성격의 최수지(18세·고2)양. 학업방해를 이유로 들며 마임을 반대하던 부모님이 지금은 딸의 마임공연을 놓칠 때마다 “안타깝다”며 말하곤 한다. 무대 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최양은 “무엇보다 표현력이 가장 향상되었다”며 “장애인이라서 못한다는 생각을 벗어나 자신 있게 활동할수록 비장애인들과 융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4년 동안 후보, 지금은 5년차 최고참”
노상훈(19세·고3)군은 중2때부터 동그라미와 함께 했다. 매년 열리는 춘천 마임축제는 각 참가팀당 총 6명씩 인원에 제한을 뒀다. 노군은 작년까지 그 인원에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 지난 4년간 동그라미 식구로 지냈다. 그는 “그동안 다양한 마임팀의 공연을 볼 수 있어 신이 났다”고 했다. 현재 그는 동그라미의 어엿한 리더다. 활발한 성격과 리더십으로 팀원들의 연기를 모니터링하며 충고하는 것이 일상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친구는 “마임을 하는 모습이 멋스럽다”며 자랑스러워한다고. 졸업을 앞둔 노군은 “아직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게 많은데 아쉽다”면서 “관심을 환기시켜 동그라미 활동에 참여를 이끌어내고 싶다”고 밝혔다.

“공연을 마친 뒤 뿌듯함이란…”
중학교 3학년이던 오은파(19세·고3)양은 선배들의 마임 공연을 접하며 마임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오양은 자발적으로 동그라미 팀에 합류해 지금까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간혹 연습 도중 충돌이 있기도 하지만 공연이 끝나면 다시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온다고. 그는 “무대 마지막에 사람들에게 받는 박수가 최고로 뿌듯하다”며 황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매 공연마다 떨리지만 재미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 끝으로 오양은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대 위에 서길 반복, 성격도 밝아져…”
김형철(18세·고2)군은 선생님의 추천을 통해 동그라미 식구가 됐다. 당시 김군은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무대에 서서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연습을 하다 보니 재밌었다”며 “지금은 연습부터 무대에 서기까지 모든 과정이 좋다”고 했다. 힘들다면 팀원끼리 동작이나 호흡이 맞지 않아 동작이 흐트러지는 게 힘들 뿐, 그 이상은 없다고. 이어 “동그라미 식구가 되면서 자신감도 없고 소극적이던 자신이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몸짓 소통, 단지 방법만 다를 뿐”
박승열((18세·고2)군은 동그라미 식구가 되면서 늘 의욕이 넘치는 학생이 되었다. 평소 집에서 게임하며 혼자이길 좋아하던 박군은 3년 전 선배의 부름으로 마임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 표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며 “선배가 잘 이끌어줘서 무리 없이 할 수 있었고 익숙해지면서 자신감도 생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군은 3살 때 고열이 나면서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비장애인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대화가 되지 않아서 힘들었다”며 “동네아이들과 친하고 싶어도 잘 어울릴 수 없었다”고 그간의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단지 들리지 않을 뿐, 소통방식만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군은 현재 동그라미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팀원으로 통한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하는 충고도 많고, 애정도 그만큼 깊다. 그는 “여러 행사 공연을 통해 느끼는 것이 남다르다”며 “나처럼 많은 후배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꿈 그리고 상상
동그라미마임팀은 지난 11월 2일 양재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청각장애교육 100주년 기념식 축하공연에 초청됐다. 당시 총 6명으로 공연을 진행하던 동그라미는 취업을 한 이강복군을 제외한 5명만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다. 5년째 동그라미 마임팀을 지도하는 이경열(41·한국마임협의회 회원)씨는 “오랜 경험이 없었다면 무리가 따랐을 것”이라며 “변화된 상황을 학생들 스스로 훌륭히 대처해내더라”고 밝혔다.
이씨는 “비장애인인 나와 정서적 교감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그들 스스로 ‘마임’에 관심이 크다”며 “장애를 가진 학생들 중에서도 유독 밝고 명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우리 전문 배우들도 공연장에서 긴장하기 쉬운데, 동그라미 팀원들은 마치 무대가 제 세상인 마냥 여유롭게 연기 한다”고 칭찬했다.
동그라미 식구들은 공연할 작품을 다함께 구상한다. 저마다 성격도 표정도 다르지만 이들이 모이면 항상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김영미 교사는 “동그라미 팀원들의 상상력은 최고”라며 “비장애인들과 다른 것은 단지 소통방식일 뿐”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장애 학생들이 자신의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행사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