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2만 명 이상의 장애인이 성희롱, 성폭력 등 피해를 당했으며 이 중 중증장애인이 경증보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몰랐던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 그리고 빈번한 인권유린, 미비한 성범죄 관련 정책까지. 장애인 성범죄, 그 실상을 짚어봤다.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문제는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여성장애인에 대한 논의 중에서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이 바로 성폭력에 대한 문제임에 불구, 시설장애인의 성폭력 문제가 시설종사자들과 부모, 자원봉사자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이슈화되었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일회성 관심환기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성폭력 피해 65% ‘그냥 참는다’   

지역기관도 못 미더워

2006년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 성폭행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을 보호해야할 교직원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가해자가 있던 학교 재단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은폐하느라 급급했고, 교직원들은 입을 굳게 닫았다(광주 인화학교 교직원, 청각장애인 성폭력 사건 2006.5). 장애인 성폭력 관련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장애인재활작업장 명령 이행하던 성폭력 전과범, 지적장애 여성 수차례 성추행 사건(2007.7)▲인천시 강화군 장애인 시설 원장과 사무국장, 장애인 자매 상습 성폭행 사건(2009.9) ▲의정부 보육시설 원장ㆍ아들이 원생 성폭행, 남자 원생은 10대 女원생 성폭행 사건(2009.9) 등 장애인들의 실질적인 보호와 학습을 담당하여야 마땅한 기관들이 장애인 보호기관이라는 이름아래 은밀히 그리고 오랜 기간 장애인성범죄를 저질렀다.
인천 장애인 보육시설의 경우 원장을 비롯해 직원 그리고 시설의 남자원생까지 정신지체장애인인 10대 여자 원생을 상대로 성폭행 및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원장은 작년 10월17일 자신이 운영하는 인천시 강화군의 모 장애인 시설에서 원생 김(16)양을 흉기로 위협 후 성폭행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김양을 성폭행한 혐의다. 같은 시설 직원도 2001년부터 약 9년에 걸쳐 김양의 언니(19)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조사결과 이들은 여자 원생들에게 선물을 사주겠다며 빈방 등으로 유인해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 원생들은 쫓겨날 것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장애인 시설에선 20명가량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우수 장애인시설’로 TV에도 자주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줬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 발생은 비단 기관뿐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형수와 조카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파렴치한 40대가 경찰에 붙잡힌 바 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김씨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형수와 조카(고교생)가 자신의 집으로 5년 전 이사한 뒤 형이 집을 비운 틈을 이용해 둘을 번갈아 가며 수십 차례 걸쳐 성폭행했다.
이처럼 가해자들은 대체로 평소 피해자와 알고 지내던 사이로 피해자가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이라는 점을 노리고 접근해 범행을 저질렀다.

성폭력 사각지대

장애인은 전 세계적으로도 5억 명에 이른다. 그러나 장애인을 위한다는 정부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이 어떻게, 얼마나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고 구제되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오히려 장애인을 소외시키며 범죄의 사각지대에 귀속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방송을 타고 이슈가 된 지적장애인 모녀의 사연이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사연은 지적장애인 여자아이와 그의 어머니 둘이 상습적으로 성폭행 당해왔다는 것. 하루 단 두 대의 버스가 다니고, 7가구의 마을 주민만이 전부인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던 모녀는 마을 인근에 사는 아저씨들과 남학생들로부터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했다. 충격적인 것은 이들 모두가 한집에서, 같은 사람에게 당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적장애아의 담임선생님은 모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교육청 심지어 청와대 신문고까지 두드렸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싸늘한 질책과 교사로서의 자질성에 대한 비난뿐이었다.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신상보호라는 명목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담임에게 함구령을 내린 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69%는 이들 모녀처럼 지적장애인 여성이지만 범죄에 노출돼 있는 그들을 위한 사회적 안정망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지난달 6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윤석용 의원(한나라당)은 “경찰청에서는 장애인성폭력에 관한 통계조차 수집하고 있지 않아 범죄예방 및 대책 수립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장애인이 우리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받고 인권이 보장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선 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다양한 여성장애인성폭력 방지 프로그램이 개발·배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철 의원(한나라당)도 “장애인 중에서도 거동이 더 불편하고 힘이 없는 중증 및 여성장애인의 성적피해가 더욱 심각하다”며 “정부차원의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미비한 정책실정은 복지부 국정감사에서도 드러났다. 국감에서 이정선 의원(한나라당)은 “장애인생활시설에 대한 조사에서 장애인 성폭행 등 유린 실태가 드러났는데도 복지부가 제출한 보고서에는 이런 사실이 모두 누락돼 있다”며 강력히 비난했다. 또 “시설 이용과 관련해 시설종사자들이 생활시설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대답을 강요한 부분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최영희 의원(민주당)도 “복지부는 성보호 주무부처 중에 하나지만 그 어떤 브리핑도, 대책도 없다”며 “복지부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성범죄 증가와 관련해 신상진 의원(한나라당)은 “내년부터 성범죄자의 인터넷 실명공개가 이뤄지지만 인면수심 가해자는 태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성범죄 처벌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 특수성 감안 필요해

지난 2006년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교사가 장애학생을 상대로 성폭행한 사건을 두고 가해자 가운데 교직원 2명은 징역 1~2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고 나머지는 공소시효와 친고죄 규정에 묶여 유야무야됐다. 피해를 입은 장애학생은 물론 그들의 부모 역시 수긍할 수 없는 판시에 피눈물을 쏟아야했다.
장애인의 경우 피해를 당하고도 성폭력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성폭력이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신지체 여성장애인의 경우 주변에서 인식하여 신고 되지 않는 한 몇 년간 지속적인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는데, 인지능력이 거의 없는 정도.
하지만 이러한 장애의 특수성에 기인한 법적 대응은 미비한 실정이다. 성폭력특별법 8조에서 ‘신체 또는 정신상 장애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자는 형법상의 강간 또는 강제 추행죄로 처벌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여기서 ‘항거불능’이라는 단어로 인해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는 고통 받고 있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항거불능’은 피해자가 술이나 잠에 취했거나, 흉기로 위협을 받거나 묶여 있어서 자력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실제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인 경우, 장애가 있기 때문에 진술을 믿을 수 없다거나 가해자와 합의하에 벌어진 일로 치부돼 대부분 처벌을 받지 않거나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민병윤 소장은 “지적장애인은 외관상 봐서는 문제가 없어 보이나, 정신적으로 미약하고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해자의 의도를 빨리 파악하지 못해 다음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른다”며 “평균 6~7세 지적수준을 가진 장애인들 역시 아동 성폭력 기준에 따라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9월 11일 지적장애인에게 비장애인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그 특성을 파악해 가해자에 대한 ‘무죄’ 판결을 ‘유죄’로 뒤엎은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7부(재판장 이광범)는 지적장애 여성을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38)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사건 전말은 성폭력 범죄로 인해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경기도의 한 장애인재활작업장에서 명령을 이행하던 최씨가 지적장애 여성을 수차례 성추행했고 이를 알게 된 피해자의 어머니가 경찰에 고소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7부는 “지적장애인이 낮은 지적수준과 인지력으로 인해 시간이나 장소 개념이 희박하고 언어 구사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의사를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여,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위축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종종 상대의 질문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등의 장애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일반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런 고무적인 판결이 나오기까지 피해자와 가족은 고소 후 2년간 사건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장애여성 운동단체들은 이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가 장애 여성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해를 넓히길 기대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성폭력수사재판과정 시민감시단’,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수원 여성의전화 부설 통합상담소’는 판결 직후 환영 논평을 내 “성폭력 피해 지적장애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고무적인 결과”라며 “사법부 전체에 지적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파급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애여성 성폭력 상담소 공감 배복주 소장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장애인이 장애 그 자체를 포함해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로 놓일 수 있음을 고려하여 내린 판시다”며 “허나 장애 여성 성폭력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이런 판시가 단지 이례적인 판례로서만 남는 현실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토로했다.

장애인 소외, 성범죄 늘려

장애인의 성폭력은 피해자의 정신적·신체적 특징과 피해자가 안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일반여성 상담소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특화된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서울, 부산, 대구, 전주, 청주 등에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부설로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가 설치됐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13개소가 문을 열고 상담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성장애인전문성폭력보호시설(쉼터) 또한 서울, 부산, 수원, 고양, 광주, 제주 등 총 15개소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실상 어려움은 여전하다. 성폭력 피해 후에는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고, 의료적 지원, 경찰초등수사 지원, 검찰 수사지원, 법적인 대응 지원을 해야 하는 데 여성장애인 스스로가 이 과정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정신지체 여성장애인의 경우 주변에서 인식하여 상담을 의뢰하지 않는 한 드러나기 힘들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부모가 지적장애인이거나 알코올 중독자 등 결손가정이어서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민병윤 소장은 “지적장애인 여성들 가운데 대부분이 가족에서나 사회에서 방치돼 역사에서 노숙하는 등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아 성범죄에 더 쉽게 노출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들에게 케어와 직업 재활을 제공한다면 성폭력의 폐해는 눈에 띄게 줄 것”이라며 정부지원을 강조했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이 지적장애인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법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법정 내 가해자 및 피해자 증인 진술이 판결에 작용하는 현 상황에서 자기 진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적장애인들의 처지는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편견도 만만찮다. 여성장애인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문화와 사회적 체제 속에서 장애인뿐 아니라 여성이라는 성차별이 가중되어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으며, 소외되어 살고 있다.
이처럼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고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장애인들에게 성폭력 예방·대처 마련 및 정책수립은 시급하다.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심한 차별과 고통을 받고 있는 여성장애인 문제는 개인과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당면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