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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에서 점역사로…"시각장애인 마음껏 책 읽는 날 왔으면"
김명화 | 승인 2017.10.10 09:47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7년차 점역사인 이정원(34·여)씨가 중국어 학습서를 점역하고 있다.<사진제공=실로암시각장복>

이정원(34·여)씨의 직업은 '점' 찍는 일이다. 그가 찍은 수많은 점은 어둠에 갇힌 시각장애인을 환한 세상과 연결해준다.

10일 서울 관악구의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역사로 7년째 일하고 있는 이씨는 한때 잘 나가던 프리랜서 중국어 통·번역사였다.

어릴 적부터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던 이씨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혼자 중국에 연수 2년이나 다녀올 정도로 열정이 컸고, 중앙대 통번역대학원까지 나왔다.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일감을 해치우며 하루하루 바쁘게 살던 어느 날 '내가 할 일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만 보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내 재능으로 세상에 더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점역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죠."

무턱대고 도전한 점역사 3급 시험에 준비한 지 2달여만에 덜컥 붙어버렸고, 2011년부터 7년째 실로암 복지관에서 한결같이 점자책을 만들고 있다. 지금은 전국에 103명뿐인 1급 점역사다.

직접 책을 보며 점자 타자기로 한 점 한 점 점역해 수개월에 걸쳐 두꺼운 점자책을 만들던 시대는 10여년 전에 지나갔다. 점역 분야도 정보통신 기술의 혜택으로 첨단화되고 있다.

소설처럼 줄글로 이뤄진 일반적인 책은 스캐너를 통해 컴퓨터 파일로 바꾼 뒤 점역 프로그램을 돌려 전자점자책으로 만든다. 시각장애인들은 이 전자점자책 파일을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점자단말기에 내려받아 읽는다.

물론 이씨 같은 점역사와 시각장애인 교정사가 제대로 점역이 됐는지, 교정할 부분은 없는지 샅샅이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과거보다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렇다고 점역사의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배움의 기회는 점차 많아지고 있다. 수식이 들어가 있는 수학 문제집 같은 학습서, 각종 도표가 들어간 전문서적, 외국어로 된 책 등은 여전히 점역사들이 직접 원서를 펴 놓고 일일이 점역해야 한다. 

이씨가 2년차 점역사일 때 방송통신대에 다니는 30대 늦깎이 대학생 시각장애인으로부터 중국어 교재를 점역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매주 강의가 이뤄지는 부분을 시간에 쫓기며 서툰 실력으로 점역해 대학생에게 전달하기를 한 학기 동안 반복했다. 

"한 번이라도 늦으면 그분은 강의를 못 듣게 되잖아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매일 그 교재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점역했어요. 이때 점역사로서 한 단계 올라섰던 것 같아요. 나중에 그분이 계속 방통대에서 학업을 이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더 뿌듯했죠."

'사내 결혼'을 한 이씨는 점역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을 하는 남편과 집에서도 점역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한다. 두 사람은 시각장애인들도 일반인처럼 어떤 장애물도 없이 마음껏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한 해에 출판되는 책 가운데 점역이 이뤄지는 비율은 5%가 안 됩니다.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지만, 시각장애인의 독서권과 학습권을 일반인 수준으로 보장하려면 점자도서관에 대한 지원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닷새 뒤인 흰지팡이의 날(시각장애인의 날·15일)에는 장애인도서관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김명화  mh6600@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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