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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배우는 아이들사군자 그리며 동양화 매력에 흠뻑 빠져 심리적 안정감까지 얻어
“선비가 따로 있나요!”
정현주 기자 | 승인 2005.01.12 11:36

“사군자는 뭐죠?”
“매! 난! 국! 죽! 이요”
“붓은 어떻게 잡아요?”
하얀 화선지를 앞에 두고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는 아이들. 작고 앙증맞은 손에 붓을 들고 있는 폼이 너무 귀엽다. ‘선비’가 된 것으로 착각한 걸까? 붓에 먹을 훔치는 것 하며 화선지에 선을 그리는 것 하며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 강사선생님도 이런 아이들의 깜찍한 마음을 눈치챈 듯 한마디 던진다.
“꼿꼿한 선비처럼 의젓하게 서서 한번 그려보세요. 어때요? 훨씬 잘 그려지죠?”
또래 아이들이 산으로 들로 바다로 놀러 갔을 법한 시간에 먹과 화선지에 취해 우리 그림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다들 그림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이 누군가의 강요로 억지로 끌려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친구랑 함께 왔다는 수인(초등 5)이는 “오늘은 난초와 대나무 그리는 것을 배워요. 잘 그려서 멋있는 부채를 만들려고요. 친구랑 재미있게 배우고 있어요”라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사뭇 진지함이 스쳐갔다.

서울시 역사박물관에서 사군자 그리기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 다들 그림삼매경에 빠져 진진한 모습
 
“난초 그리기 너무 재밌어요”
지난 8월부터 역사박물관에서 시작된 초등학생들을 위한 부채 만들기 강의에 모인 50여 명의 아이들. 저마다 자신의 솜씨를 뽐내기 위해 한껏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난초그리기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분위기가 너무 조용해 과연 ‘초등학생들이 맞나?’하는 의심이 갈 정도로 분위기가 진지했다.
하지만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왁자지껄’ 여기저기서 수다가 들려왔고, 선생님이 한 아이의 그림을 칭찬하자 “아, 짜증나!!” 하며 괜한 질투심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엄마가 한 번 해볼래? 하고 말하길래 고민하다가 결정했어요. 전 하기 싫은 일은 절대 못하거든요. 지금은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부채 만들어서 엄마 갖다 주려고요.”
선생님이 그린 그림을 몇 번이나 보며 따라 하길 반복하는 정현이는 제법 손에 익은 듯 붓터치가 자연스럽다.
정현이 곁에서 그림을 지켜보던 선생님이 “조금만 더 연습하면 훌륭한 화가도 될 수 있겠는걸? 어때?”라고 말하자,
정현이는 “에이~ 이 정도 갖고 그러세요. 이건 못 그린 건데…, 더 잘 그릴 수 있어요”라며 속으론 내심 뿌듯한 듯 기분 좋은 표정이 얼굴에 역력하다.
이렇듯, 아이들이 방학이면 동양화를 가르쳐주는 곳을 직접 찾아 우리 것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지금 우리의 미술교육은 서양화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서예나 동양화는 교과서에 실려 있기는 하지만 실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동양화 그리기는 선입견만 버린다면 다가서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활동이다.
중요한 것은 붓 쥐는 법, 그림 그리는 방식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들이 많이 시도하는 ‘미술놀이’ 과정에 동양화 그리기를 넣는다면 아이들이 더욱 풍부한 미술체험을 할 수 있다. 먹물로 수묵화를 그리기 보다는 물감을 이용해 색깔을 나타내는 편이 아이들에게 더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상도초등학교 홍공주 교사는 “교육 과정상 배우지 않아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특별히 동양화 그리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양화 그리기와 감상은 서양화에 못지않게 교육적 효과가 있다.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동양화의 특성은 아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점과 선을 중시하는 동양화를 그리면서 꽉 짜인 서양미술 그림과는 달리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면서 얻는 즐거움도 크다.”
‘붓은 이렇게 잡는 거란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붓으로 선을 그리는 모습
 
이 뿐만 아니다. 먹이나 동양화 물감, 화선지의 질감은 서양화의 그것들과 전혀 달라 아이들에게 신선한 미술적 충격이 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감정을 담고 있는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동양화 그리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은 일부 서예학원에 국한돼 있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그림 그리기 과정은 전무한 실정이다.
동양화 그리기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교육과정의 문제말고도 여러 가지다. 우선 서양화와는 전혀 다른 재료들을 사는 비용도 적지 않고, ‘동양화’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엄숙함과 딱딱함이 선입견을 만들기 때문이다.
홍 교사는 “예전에는 동양화를 시작할 때 붓 쥐는 자세부터 먹을 가는 법까지 엄격한 ‘법도’를 따라야 했다”며 “동양화 그리기가 가볍고 부담 없는 미술 체험 활동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붓을 쥐는 방법이나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굳이 가르치려 들지 말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서울교대 미술교육과 한태상 교수는 “현재 교사 양성 과정부터 동양화 수업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교육과정과 교사양성 과정 모두 동양화의 비중을 늘려 어린이들이 일찍부터 동양화의 색다른 정취를 느끼고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그림 그리기’를 기획했던 예술의전당 전시사업팀의 이소연 씨는 “어린이들에게 동양화는 경험해 볼 기회가 원천 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우리그림 그리기에 참여하는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열렬한 반응을 보면 동양화 체험에 사람들이 얼마나 목말라 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솟대만들기, 전통혼례 등 다양한 체험
“공자님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 따라 해보세요 비례(非禮)는 물시(勿視)하라.”
훈장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학동들은 또박또박 논어 구절을 따라 외운다. 중간에 하품을 하거나 아예 고개를 떨구고 잠든 아이들도 눈에 띈다. 무더운 여름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기특할 지경인데, 공자 맹자라니!
“덩기덕 덩더더덩~~”
옆 교실에서는 사물놀이를 하는 소리가 연신 울러 퍼진다. 장구채를 처음 잡았지만 기본장단을 배운 뒤엔 제법 흥겹게 장구를 치는 아이들. 한낮의 병아리처럼 졸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는 옆방에 비해서는 들뜬 분위기다.
“장구치는 걸 TV에서나 봤는데 와서 직접 해보니 너무 신나요. 학교에서도 가르쳐줬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6학년인 성현이는 신기한 듯 장구와 북을 번갈아 두드리며 한창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선생님이 한마디 하자, 금새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하고 ‘진짜연습’에 들어갔다.
농협 서울본부가 마련한 ‘아름다운 추억 쌓기 어린이 농촌문화체험’ 행사. 어린이 금융교육을 비롯해 고추 따기 등 농촌체험과 전통예절 강습, 솟대 만들기, 전통혼례체험, 우리가락 배우기 등으로 짜여진 행사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는 흥미롭기만 했다.
강전호(12)군은 “재미도 있었지만 배우는 것도 많았다. 앞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더 좋아할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날 일일 대리 학부모 역할을 맡은 30여 명의 주부모임과 고향 주부모임 회원들도 아이들의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자못 대견스러워 했다.

동양화 그리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 국한돼 있어 아이들은 우리 것에 늘 목말라 한다.
 
이렇듯, 많은 아이들이 우리 것을 배우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새삼 우리 교육 현실의 안타까움이 절실하다. 먼저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제대로 된 교육문화가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사회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
각 교실에서 사군자를 그리고 우리가락 소리가 들려오고, 또 북과 장구를 피아노 바이올린 보다 더 좋아하게 될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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