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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허용해야
김혜민 기자 | 승인 2010.07.30 09:37

불법낙태 근절을 주장하는 프로라이프와 낙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프로초이스 간의 논쟁이 뜨겁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낙태가 불법인 이유는 현행법이 낙태가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경우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낙태는 주로 사회 경제적 사유로 발생하며 혼외임신, 자녀불원 등의 간단한 표현 안에는 출산을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조건이 존재한다. 이에 사회 경제적 사유에 따른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공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할 경우 미혼모 급증, 원정 인공임신중절수술, 성폭력 피해자의 원치 않는 분만 등 사회적 부작용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현실을 반영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적 규제가 낙태율 높여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태아의 생명 존중은 자살, 존엄사 등과 함께 오래전부터 종교계를 포함한 각계에서 논의 되어 왔다. 특히 인공임신중절은 생명존중과 인권이 서로 상충되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은 형법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돼 있다. 그러나 인공임신중절수술을 강제로 억압하는데 따른 부작용으로 이 규정은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2005년 고려대학교가 실시한 전국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은 기혼여성이 20만 3230건, 미혼여성이 14만 7360건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4.4%만이 당시 모자보건법상 합법이고, 나머지 95.6%는 불법인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수술 중 90%는 사회 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기관 대상 조사에서는 연간 가임기 여성 1000명당 미혼여성 12.9명, 기혼여성 17.8명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았으며 전체 중절수술 가운데 기혼이 차지하는 비율이 58%, 미혼이 42%였다. 연령별로는 20~34세 사이가 68.5%이었고, 미혼여성은 20~24세, 기혼여성은 30~34세 연령층의 수술이 가장 많았다.
수술 당시 임신기간은 12주 미만이 96%로 대부분이었으나 10대 여성의 경우 12주 이후 시술 비율이 12%에 달했다. 이는 나이가 어릴수록 임신 사실을 숨기다 뒤늦게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시술 이유는 미혼여성의 경우 미혼이어서, 미성년자여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등 사회 경제적 사유가 95%이었다. 이에 반해 기혼 여성은 자녀를 원치 않아, 자녀 간 터울 조절을 위해 등 가족계획 때문이라는 응답이 75%이었으며 경제적 어려움이 17.6%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모자보건법 개정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인공임신중절이 다른 나라에 비해 건수가 많고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가 2009년 12월부터 한 달간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인공임신중절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78.4%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 및 피임교육이라고 응답했다. 교육의 내용으로는 69.0%가 효과적인 피임법을 원한다고 밝혔다. 순결교육이나 생명존중에 관한 윤리교육이라고 답한 여성은 많지 않았다.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답변도 13.5%에 불과했다. 또한 우리사회가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성교육, 피임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우리나라는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형법 규제가 엄격하고 모자보건법상 그 허용사유도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것은 법적 규제가 수술을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낙태율이 높아진 배경은 1973년 모자보건법 도입 후 인구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보건복지부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임신 초기의 낙태인 월경 조정술 피임법을 권장해 산아를 제한했기 때문이다”면서 “최근 정부가 저출산의 해법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통제하려는 것은 여성을 인구 조절을 위한 국가 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임신 허용법안 반드시 필요
인공임신중절을 금지하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낙태법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인공임신중절은 여성의 신체와 연결되고 출산·양육과도 관련이 있어 전면적 금지 또는 낙태여성과 시술자의 처벌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다른 나라도 법적으로는 낙태를 금지했으나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결국 어느 범위에서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가 낙태법의 차이이며 논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낙태를 금지하지만 임신 초기 일정기간에 허용하는 입법을 기한방식이라고 하고 우리나라 모자보건법처럼 허용사유를 두는 입법을 사유방식이라고 한다. 사유방식을 취하는 낙태법은 의학적 사유, 윤리적 사유를 예외 없이 인정하고 있지만 사회 경제적 사유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장이 대립된다. 사회 경제적 사유는 전체 낙태사유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극히 엄격한 낙태금지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엄격한 낙태법은 현실을 외면해 낙태의 양산을 가져오고 낙태의 재범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미혼 여성은 혼전 임신시 사회적 편견으로 양육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10~20대 미혼모는 아이를 양육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떠안아야 해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쉽다. 한국 여성학회 학술포럼 ‘인공임신중절수술 불법화와 여성’에서는 미혼 여성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으나 결국 삶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미혼모들의 삶을 읽지 못한 배려 없는 정책이 아이 낳기라는 힘든 선택을 한 여성들에게 이중 삼중의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혼전 임신을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하고,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출산을 권유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혼외 임신으로 인한 원치 않는 출산도 가족 해체 등의 사회문제를 발생시킨다.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현재 기혼여성의 마지막 임신의 47.1%가 원치 않는 임신이었으며 이 중 78.9%가 인공유산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원치 않은 임신 중 일시적 피임방법의 사용으로 피임에 실패하여 임신된 비율은 약 37%였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의 사회 경제 의학적 사유는 △피임 중 임신된 경우 △유전성 질환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초음파로 확인된 태아 기형이 있는 경우 △이전에 출생아 중 유전질환이 있는 경우 △양수 검사에서 염색체 이상이 확인된 경우 △태아 기형이 있어 출생 후 치명적인 경우 △산모나 태아가 전염성 질환에 감염된 상태인 경우 △임신 중 약물이나 방사선에 노출된 적이 있는 경우 △신용 불량, 파산 등 경제적 사유로 양육이 불가능한 경우 등이다.
이인영 홍익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탁아시설 등 한부모 가정에 대한 복지시설이 미흡하기 때문에 임신을 하게 되면 낙태를 선택하게 된다”면서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복지 및 양육에 관한 사회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해야
인공임신중절수술은 그동안 인구조절 차원에서 관심을 갖거나 생명윤리 혹은 성 도덕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선택하고 경험하는 여성에 대한 권리는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여성의 몸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여성의 삶과 긴밀히 연결돼 있으므로 여성의 출산권 관점에서 재조명돼야 한다. 여성의 출산을 여성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산과 양육을 책임질 당사자는 여성이고, 원치 않는 임신으로 평생 고통 받을 당사자도 여성이다. 따라서 인공임신중절수술 여부는 국가도, 배우자도, 의사도 아닌 여성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 법제의사는 지난달 5일 대한의사협회 동아홀에서 열린 ‘비의학적 사유에 의한 인공임신중절 허용규정’을 중심으로 한 모자보건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2차 토론회에서 “의학적으로 시술이 안전한 인공 임신중절 수술 시기인 3개월까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수술의 결정은 전적으로 임산부의 독자적 판단에 맡기고 의학적 판단에 따라 그 실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의학적으로 시술이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수술 시기는 3개월 이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임신 3개월 이후의 중절수술은 시술의 위험성이나 후유증이 심할 수 있으며 시술시간, 산모의 고통, 비용 등이 많아지므로 수술의 시기는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12주 이후의 수술에 대해서는 산모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일부 혹은 전부를 제한하는 안을 제시했다.
임신중기수술은 초기에 비해 합병증 및 후유증이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12주부터 24주 이전까지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제한하되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시술의사와의 상담과 체크리스트를 통한 철저한 검증 및 숙려 제도를 시행해 수술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출생 후 생존이 가능한 시기인 24주 이후에는 산모의 생명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반영해 임신중절수술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적용한다. 국가가 태아의 생명과 건강보호에 대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금지할 수 있지만 임산부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12주 이후에서 24주 이전의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로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심각한 기형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태아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태아기형이 다발성 또는 심각한 기형으로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이 제안됐다.

외국의 사례
다른 나라에서는 사회 경제적 사유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임신 기간에 따라 허용하고 있다. 스위스는 10주까지 허용하며 독일, 덴마크,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2주까지, 포르투갈은 16주까지, 노르웨이는 18주까지, 영국, 쿠웨이트, 대만 등은 24주까지 허용한다.
일본에서는 사회 경제적인 이유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이 1948년 이후 모체보호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허용돼 왔다. △결혼하지 않은 임신 △사회 경제적인 사유 △산모와 태아에게 질병이 있는 경우를 인공임신중절수술의 사유로 채택하고 있다. 임신이나 출산이 산모의 건강에 해가 되거나 경제적으로 악화시킬 염려가 있을 때도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자격이 있는 의사가 낙태를 시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일본은 1949년 경제적인 이유로 임신중절시술을 할 수 있는 조항을 추가해 세계에서 최초로 경제적인 적응사유를 인정했다.
정상적인 양육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에게 임신의 지속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 경제적 적응 사유는 대체로 임신부의 사회적, 경제적 부담을 전제로 한다. 임신부 개인이 처해있는 상황 뿐 아니라 임신부의 가정 및 그 밖의 상황도 고려의 대상이 되며, 이러한 사정들이 임신부에게 중대한 부담이 될 때 사회적 적응으로 인한 낙태를 허용한다. 즉 사회적 적응 사유란 양육의 의지나 기대가 절망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는 사유를 말한다.
사회적 적응사유의 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미성년자의 임신이다. 오스트리아 형법의 경우 임신한 여성이 임신 당시 미성년자면 의사가 낙태할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형법 제 97조).
핀란드 낙태법은 임신 당시 17세 이하인 경우 여성의 요청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르면 허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낙태법 제2조에 의하면 미성년자의 여성에게 특별히 보호자 또는 특정된 신탁인의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미성년자의 보호자는 언제든지 낙태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으나 낙태 신청자가 청문에 반대하면 그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환자의 지위와 권리에 관한 법률 제7조, 제9조제2항). 임신한 여성이 임신 당시 만 17세 이상인 경우에는 미성년자라고 하더라도 합법적 낙태를 위한 적응사유가 존재하는지 검토해야 하며 임신한 여성의 연령에 따라 낙태의 허용요건이 달라질 수 있다.
덴마크 낙태법은 일정한 연령 제한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임신한 여성의 연령이나 미성숙으로 양육을 할 수 없는 때는 12주가 경과한 후에도 낙태가 허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헝가리의 낙태규제법은 1953년 제정됐고, 세 차례의 개정을 통해 낙태의 허용범위를 넓혔다. 1992년 헝가리 의회는 새로운 낙태법을 제정했는데 임신한 여성에게 위기상황이 있어 12주 이내에 요청하고 상담절차를 거치면 낙태가 허용된다는 것이다. 헝가리 보건부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를 유발하거나 사회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을 유발하는 경우를 위기 상황으로 정의했다.

현실적 대책 마련해야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인공임신중절수술 금지를 법으로 강제할 경우 미혼모의 급증, 원정 중절수술 등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시술 책임의 위치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전문가적 견해와 의료 윤리에 입각해 시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사회 경제적 사유와 태아 사유 부분을 허용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의사에 반해 태어난 아동의 양육을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증진해야 한다.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찬성과 반대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타협안 마련이 더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 이에 따른 출산과 임신, 육아 등 성에 대한 건전하며 정확한 지식의 확산과 의료계 내부의 자정 및 개선을 통해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요구된다. 

자료/대한의사협회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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