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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반세기 복지의 신의 손, 이종길 경기복지재단 초빙연구원
이유정 | 승인 2016.04.12 15:10

이종길 경기복지재단 초빙연구원은 1976년에 중앙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 후 캐나다 유니테리안 봉사회를 시작으로 복지계에 발을 들였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지역사회복지,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 40년간 복지에만 몸을 담았다. 우리나라 복지 중심 축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종길 연구원에게서 그의 반세기 복지인생을 들여다보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회복지의 길
사회복지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고 우리나라에 사회복지학과가 서울대, 중앙대, 이화여대, 이렇게 세 곳밖에 없었던 시절 이종길 연구원은 어떻게 사회복지학과를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그 때 당시 월사금이라고 해서 매달 학교에 등록금을 내야했어요. 그런데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에 못가는 아이들이 많았죠. 저희 집도 형제가 6남매라 집이 그렇게 풍족하지는 못한편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우리 동네 친구들 중에 부모가 없거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학비를 몰래 대주고 계셨더라고요. 그 사실을 알고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적성검사 결과를 보시고 신학과나 사회복지학과를 추천해주셨어요. 그 때 ‘이 것이 바로 내가 해야할 일이구나’ 하며 사회복지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죠”

전쟁고아서부터 취약계층 청소년까지
이종길 연구원의 첫 직장은 캐나다 유니테리안 봉사회였다. 봉사회는 로타 히치마노바 박사가 6.25 동란 때부터 한국에서 난민구호사업등을 해오며 4개의 고아원과 6개의 복지관을 설치해 500여명의 불구고아와 400여명의 불우노약자들이 삶의 의지를 갖출 수 있도록 지역복지 사업을 한 봉사회다. 이종길 연구원 또한 영등포 복지관에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했다.
그 후 2년 뒤 경남 창원의 청소년 직업훈련원으로 장소를 옮긴 그는 가정형편상 중학교 고등학교도 진학하기 힘든 청소년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하려는 도약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이 필요한데 기술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사명감도 심어주고 직업관을 갖게 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그러한 훈련을 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 장애인 컴퓨터학과 개설
이종길 연구원은 83년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장애인복지관을 서울시에 도입해 장애청소년들에게 직업훈련을 가르쳤다. 그 때 당시에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이 대부분 하고 있는 일은 수공예, 목공예와 같은 단순노동이었다. 하지만 이종길 연구원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컴퓨터 교육을 장애인들에게 시켰다.
“장애인들은 단순한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바꾸고 싶었어요. 고급 기술을 가르쳐 장애인들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죠. 이러한 사실을 알리니 금성사에서 컴퓨터 10대를 무료로 지원해줬어요. 덕분에 장애인들을 훈련 시켜서 프로그래머로 기업에 취업 시키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죠.”

더불어 사는 사회 지향해야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종길 연구원은 장애인 중에서도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더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인들은 머물 수 있는 기한이 제한돼있어 시설에 3년에서 4년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가야해요. 그래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작업보호작업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지산업’이라는 보호작업장을 서울시에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부모회비로 운영하다가 지금은 정부에서 지원해주고 있죠.”
이외에도 이종길 연구원은 정년퇴임 직전 노인 복지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가 마지막에 몸담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나래울’이라는 복합복지타운은 노인, 장애인, 청소년 등 5개의 시설이 칸막이 없이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이다. “처음에는 같이 생활한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르신이 직접 휠체어도 밀어주고 같이 놀러도 다니고 발달장애인들의 생각이 느리다보니 체계적인 일은 어르신이, 힘이 많이 드는 것은 장애아동들이 서로 도와주며 친구처럼 지내고 있죠. 사회가 앞으로 지향해야하는 것은 통합이에요. 더불어 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해야하는 것인데 따로 살면서 이해해달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죠”

한국의 캠프힐 만들어지는 그날까지
이종길 연구원의 40년 이야기를 듣다보니 만약 그가 없었다면 현재 우리나라 복지는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가 우리나라 복지에 이바지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많다며 “얼마 전에 캠프힐을 연구하러 유럽을 다녀왔어요. 캠프힐은 장애인들끼리 사는 마을로 그 곳에서 교회, 학교, 직장까지 다닐 수 있는 지역사회의 섬 같은 곳이죠. 우리나라도 그런 마을을 얼른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마치 인생의 출발점에 다시 선 듯한 모습이 느껴졌다.
이어서 “사회복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족을 느끼기 쉽지 않겠지만 일하는 만큼의 대우를 받아야하는데 사회복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처우가 예나 지금이나 좋지 못해요. 무엇보다 후배들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행복하게 일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어야하는데 그 부분을 선배로써 잘 하지 못했다는 것이 현재 가장 아쉽고 미안하다”는 그의 말투에서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간 이종길 교수가 40년간 이뤘던 성과만큼이나 앞으로 그가 우리나라 복지계에 이룰 10년이 더욱 기대된다.
글/ 이유정 기자·사진/ 이종길 연구원

이유정  jenny18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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